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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한정식 코스, 하려면 제대로 하자

by 비르케 2016.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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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한정식 코스 요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알기로, 여러 번에 걸쳐 음식이 나오는 것은 원래 한식이 아니다. 한식은 고급이라 해도 이른바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꺼번에 음식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요새 고급 식당들이 많아지다 보니 거기 발 맞춰 한식도 코스 요리를 개발하고, 좀더 고급 요리의 이미지로 거듭나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다. 전통을 고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어떤 일이든 자기만의 컨텐츠 계발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우니 오히려 긍정적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라는 건지, 기다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한식집을 다녀온 터라 어이 없는 마음에 포스팅을 해본다. 우선 전채요리다.

 

첫인상이 참 좋았다. 유기 그릇도 이쁘고, 음식도 깔끔했다.

 

회가 일인당 두 쪽씩 나왔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괜찮은 맛집을 찾은 것 같아 내심 흐뭇함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나온 음식이 난감하다. 밥도 없이 달랑 김치와 코다리찜... 밥이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 슬슬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시장하니 나도 모르게 시뻘건 김치와 시뻘건 코다리찜에 자꾸 젓가락이 간다. 그러면서 시선은 자꾸 주방쪽으로만 향한다. 마냥 기다린다. 시장을 반찬으로 얹어 식감을 살리고자 함인지, 손 놓고 의자에 기대 앉아 있는 손님을 본체 만체 그냥 쓱쓱 지나다닌다. 주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많아 분주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뭔가 사정이 있어 이해를 바라는 언질을 준 것도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테이블에 벨도 없고, 기다리다 못해 일하시는 분을 불렀다. 그냥 한꺼번에 다 달라고 했다. 일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밥도 드려요?"

 

뭔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한식은 밥과 국, 반찬이 모두 함께 나오는 것이 기본 아닌가. 전채 코스가 있다 한들, 당연히 밥과 찬은 함께 나와야 맞는 것이지, 어떻게 밥도 줄까냐고 물을 수가 있을까. 어이 없기도 하고, 그냥 뭐든 한꺼번에 다 달라고 했다. 그러고나니 음식이 나온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상황? 가운데를 비워놓고 세팅을 한 지 한참이 지나고, 밥을 거의 먹어가는데도 그 자리는 채워질 줄 모른다. 전골이라도 온다는 것인가. 그 가운데 공백에 뭐가 들어올지 상상하며 반 정도 남은 밥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미 한풀 꺾인 식욕도 그다지 올라오지 않고, 마음 속으로는 그저 본전 생각만 났다.

 

드디어 그 분이 오셨다. 그기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후식인건가... 뜨거운 후식...

 

그래도 매실차나 하다 못해 커피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또 마냥 쓱쓱 지나다닌다. 후식으로 차 같은 건 없냐고 하니 없다 한다. 정말 요즘 애들 표현으로, "헉!"이다. 이런 뒤죽박죽인 곳이 한정식집이라고, 그것도 맛집에 올라 있다. 카운터에 있는 주인에게 직접 말을 하니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외국에서 사온 온갖 물건들로 가게를 예쁘게 장식한 음식점 주인,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유기 그릇에 담긴 음식이 고급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한식을 코스 요리로 하려거든 제대로 하면 좋겠다. 우리 입맛에 맞는 밥과 찬과 국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가는 곳이 한정식집 아닌가. 아늑한 인테리어를 감상하고 유기그릇이 수저와 부딪힐 때 나는 청아한 소리를 듣는 건 먼저 음식이 마음에 들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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