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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현진건의 <고향> 속 일제의 수탈과 간도 이주

by 비르케 2016.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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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고향'이라는 작품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작중 화자인 '나'와 마주 앉게 된 사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기차는 지금처럼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방처럼 생긴 형태다. 네 명이 그 안에 들어가 앉을 수 있는데, 작품 속 찻간에는 앞서 언급한 작중 화자인 '나'와 바로 맞은 편 사내 외에도, '나'의 곁에 앉은 중국인, 사내의 곁에 앉은 일본인이 더 있다.

 

'나'의 시각으로 본 사내는 좀 유별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옥양목 저고리에 중국식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일본식 기모노를 두루마기격으로 걸치고 있다. 감발(헝겊으로 싼 발)에다 짚신까지, 초라한 행색이기도 했지만,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저 나라 사람도 아닌 듯한 옷차림이 참 우습다.

 

사내는 옆에 앉은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먼저 말을 건다. 그러나, 속내를 보이지 않고 그저 '소데스까(그렇습니까)' 하고 마는 일본인을 두고, 다시 중국인에게 중국어로 말을 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저 중국인의 '수수께끼 같은 웃음'만 돌아온다. 그제서야 사내는 '나'에게 말을 건다. "어데꺼정 가는기오?" 하는 경상도 방언으로 운을 띄운 그는, 서울까지 간다는 '나'의 말에, 서울에서 오래 살았느냐, 자기는 서울서 내리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등, 이런저런 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사내는 본래 역둔토를 경작하며 살았다 한다. 역둔토란 조선시대 역참(통신기관: 파발, 봉수)이 있던 곳에 그 역참의 행정 관리비 조달 목적으로 운영되던 땅을 뜻한다. 조선이 몰락하게 되면서 민전화되어, 싼 소작료를 물고 경작이 가능했던 것을, 일제가 1910년 전후로 강제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소유권을 동양척식회사로 넘겨버렸다. 그로 인해 비싼 소작료를 물게된 이들이 많았으니, 사내의 가족도 그 중 하나였다.  

 

1910년대 일제에 의한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부연하자면, 조선의 모든 토지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했기 때문에, 당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자기 집안 땅이라 해서 당연히 신고를 안 하고 있던 이들마저 토지를 갈취당했다. 그러므로 사내의 가족처럼 국가 소유의 땅에 편하게 농사 짓고 있던 이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내는 열일곱 나이로 부모님과 함께 서간도로 향한다.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 수탈에 쫓기다시피 한 이들이 택한 길은 조국을 버리고 간도땅으로 도망치듯 떠나가는 것 뿐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도 간도는 등장한다.

 

         ...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당시 간도로 간 이들 대부분은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해야 했다. 일제의 폭압에서는 벗어났지만, 간도라는 땅은 중국인들도 쓸모가 없어 방치하다시피 한 땅이었으니, 그 황무지, 돌무지를 개간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어마어마한 공이 드는 일이었다. 그나마 사내의 가족이 간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쓸 만한 땅은 모조리 차지해 버리고 난 다음이었다. 사내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그 후 다시 어머니도 영양부족과 힘든 노동으로 잃게 되었다며 한숨을 짓는다. 사내의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진 '나'는 기차에 타기 전 친구들이 사준 정종을 꺼내 사내에게 따라준다. 

 

그후 사내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곳에 더는 홀로 머물기 싫어 여기저기 떠돌다 일본으로 흘러들어간다. 일본에서 죽어라 일을 하다가 고향이 그리워 찾은 길에, 서울에 일자리나 구해볼까 해서 간다는 것이 그의 사연이었다.

 

"고향에 가니 반기는 이가 있습데까?"

하는 '나'의 물음에. 사내가 답한다.

"반기는 이가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드마." 

사내는 안타까운 마음에 굵은 눈물을 떨군다.  

 

그런 그가 고향 읍내에서 누군가를 만나긴 했다고 덧붙인다. 한때 혼담이 오가다가 홀연히 사라진 여자였다. 아버지에 의해 팔려갔던 그녀는 늙고 병든 모습으로 고향 읍내에 와 있었다. '나'가 준 술을 연달아 마신 사내가 노래가락을 풀어놓는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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