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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에 월백하고... 센티멘탈리즘의 정제

by 비르케 201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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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 중

가장 적격이라 생각되는 표현은 이거다.

 

다른 사람이 50으로 여기는

 어떤 현상에 대해

70~80으로까지 느끼고 생각하는 것.

 

기쁨을 느끼는 것도, 슬픔을 느끼는 것도,

행복이나 사랑을 느끼는 지수도 마찬가지다.

 

고려 시인 이조년의 시 '다정가'는

이러한 센티멘탈리즘을

가장 잘 대변하는 시인 것 같다. 

 

 

옛날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 이화(梨花).

 

그 하얀 배꽃에

 하얀 달빛이 한 점

은은하게 드리운다.

 

밤이 깊어 삼경(자정 전후)인데,

잠 못 이루고 달빛 앞에 서 있는

'나'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규(두견새) 울음 소리만 야속하다.

 

그리하여 생각한다.

'다정도 병이런가...'

 

다정(多情)...

바로 센티멘탈리즘이다.

 

하얗게 핀 배꽃에 앉은 하얀 달빛,

아무도 없이 두견새 소리만 구슬픈 밤,

봄이 물오르고 바람이 살랑이는 속에서,

마음이 신숭생숭해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마음을

어쩌면 이리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남들이 50으로 느낄 일을

80이상 90으로까지 느꼈다면,

어쩌면

'감성(感性)'을 지나 '감상(感傷)'으로 갔다면...

 

그랬더라면 

달빛이 내리는 이화 그늘에서의 읊조림이

이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동요케 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딱 그만큼, 딱 적당한 거리에서,

봄의 기운과 이화의 화려함,

또 달빛의 황홀함,

그리고 그 앞에 선 화자의 마음을

이 시조는

너무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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