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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사우디 왕자의 죽음 소식에 떠올린 사도세자

by 비르케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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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카비르 왕자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4년 전 사소한 말다툼으로 친구를 살해한 혐의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보상을 거부하자 사형이 확정된 것인데, 왕족이 사형에 처해진 이번 사건을 두고 SNS 반응도 뜨거운가 보다.

 

사우디에는 수천 명의 왕족이 존재한다고 한다.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배우자가 22명,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이 45명이라고 하니, 또 거기서 태어난 왕자들의 수는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 왕족 중에서도 카비르 왕자는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인데, 결국 법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현 국왕인 살만 국왕은 평상시에 "왕자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법 앞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 바 있고, 이번 카비르 왕자의 사형선고에도 특별한 개입은 없었다. 카비르 왕자가 유일한 혈육이었어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어쩌다 나 있는 왕자를 죽게 내버려둔 조선시대 임금이 생각났다. 

 

 

영조의 초상이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이다. 첫아들이었던 효장세자가 어린 나이로 죽고, 그로부터 7년 뒤에 겨우 얻은 아들이다 보니 어찌 귀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정권 다툼의 희생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자인데,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를 설마 작정하고 보내기야 했을까.

 

영조는 당파 싸움을 진정시킬 대안으로 탕평책을 썼지만, 선조 때부터 시작된 사림 간의 기나긴 당파 싸움은 여전히 끝이 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강건하고 지혜로운 임금을 만들고자 한 영조의 욕심이, 세자를 끊임없이 주눅들게 하고, 결국 눈을 흐리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하들 중 누구 하나 두려워 만류하지도 못 할 정도였다니,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아버지로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세자가 그런 변고를 당할 정도였으니, 정조 임금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 뒤로 이어지는 60여년간의 세도정치, 또 이어지는 외세 침략과 주권 강탈... 아마도 조선이 망할 징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우디의 국왕이 영조 임금처럼 외아들을 두었더라면 아마도 ''왕자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법 앞에서 다르지 않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었을까.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공적 판단에 맡기는 일이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가혹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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