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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by 비르케 2016. 11. 10.
300x250

 

화자인 김춘수가 '이중섭'을 만난 일을 쓴 시다.

 

광복동과 남포동은 부산에 있는 지명이다.

즉, 부산에서 이중섭을 만났다는 것인데,

부산으로 말하자면, 이중섭 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인고의 장소이다.

 

부산에서 이중섭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시 엘리트 코스였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였지만

한국전쟁은 그를 비참함속으로 몰아넣었다.

 

원주에 어머니를 두고 잠시 피난한다는 것이

영영 이별이 되어 버렸고,

집도 절도 없는 궁핍한 삶 속에서는

그림마저도 사치였다.

 

그의 아내는 일본 여자였다.

유학 시절 만난 마사코(한국 이름 '남덕')는

그에게 있어 등불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다 결국 병이 들었고,

어쩔 도리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인 일본으로 향한다.

 

이중섭도, 그의 가족들도 그처럼 서로 영영 

떨어져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가족과 헤어져 외로운 삶은

해가 바뀔수록 다시 만날 기약조차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중섭이 가족들에게 쓴 편지다.

이런저런 사연들과 함께,

자신과 아내, 두 아들이 함께 있는

낙서 비슷한 그림도 넣었다.

그에게 가족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부산 생활을 접고, 어찌어찌 또

제주에서 살게 된 때가 있었다.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에게는 아이들이 있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그나마 자연과 교감할 수 있고

아이들과 맘껏 뛰어놀 수 있었던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그의 그림속에는 꽃게가 참 많이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꽃게를 잡고 놀던 때다.

그때의 기억은 나중에까지 그의 기억속에

행복으로, 또 한편 가슴 아픔으로 남게 된다.

 

 

 

이중섭은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인생은 참 기구했다.

 

때로는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

시인 구상 등, 간간이 만나게 되는 친구들에게

담배 은박지를 부탁해야만 했고,

 

가족과 헤어져 평생을 그리워하다

마음의 병이 생겨 홀로 죽어갔다.

 

그의 뇌리속에는 늘 가족과 함께 했던

그 바다가 있었을 것이다.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너온 아내,

가족을 위해 해변 하역장을 전전하던 삶,

아이들과 바다에서 놀았던 추억들,

바다 건너에 있는 그리운 가족...

 

그래서 김춘수는 이 시를 통해,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며 설레던

이중섭의 진한 그리움도,

뒤이은 깊은 좌절도 모두

'바다'를 통해 형상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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