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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브레히트

by 비르케 201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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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에서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도시에서 같으면 그렇게 마구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 텐데, 나무는 가지를 뻗다가 뻗다가 아래로 아래로 굽어 땅을 향해 기고 있었다. 애처로운 마음에, 할 수만 있다면 막대기 몇 개 가져가서 그 고개를 위로 쳐들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도로변, 그 나무가 자리한 집은 한눈에 봐도 폐가가 분명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자고로 표가 난다고 했다. 슬레트 지붕 개조가 시작된지가 이미 오랜데, 그 집 처마는 끝부분이 바람에 뜯겨 날리고 빗물에 쓸려 먼지가 될 때까지 모든 걸 순리에 맡기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 집의 벽에는 금이 가 있고 흙빛과 녹물만 황량하게 눌러앉아 있었다. 사람이 떠난 시골 폐가와 그 옆에서 세월따라 늙어 쓰러져가는 나무, 요새 노령화 사회 빈집 관련 이야기가 뉴스나 다큐에 오르내릴 때마다 배경화면으로 보던 장면들과 겹쳐져 더 애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Schlechte Zeit für Lyrik)'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당에 구부러진 나무는 토질이 나쁜 땅임을 말하지,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으레 나무를 욕하곤 해. 못 생겼다고..'

 

 

 

 

나무가 못 생기고 싶어 못 생긴 게 아니고 토질이 나빠 못나게 뒤틀렸고, 자신도 서정시를 쓰기 싫어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서정시를 쓰기에 안 좋은 시기(Schlechte Zeit für Lyrik)라서 안 쓰는 것임을 브레히트는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기엔 세상에 아픔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전쟁으로 죽는 것 만큼이나 남아 있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도 컸음을 의미한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독일은 천문학적 전쟁 배상금을 떠안아야 했고, 그것을 감당해야 했던 독일 국민들은 순간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만 같은 허상에 사로잡혔다. 바로 히틀러, 브레히트 시 속의 '엉터리 화가'가 그다. 히틀러 정권을 피해 망명길에 오른 브레히트는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서야 반쪽으로 나뉜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택한 곳은 동독이었다. 당시 수많은 학자나 정치가들이 동독행을 택했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 모습과도 비슷하다.

 

아름다운 대상들을 두고도, 그 대신 일그러지고 처참한 사회를 더 표현하고자 했던 브레히트의 모습만큼, 내가 본 나무도 가려진 내막을 알고 나면 더 가슴아프고 동정 어린 객체일지 모른다. 하지만 스치듯 지나온 연고 없는 시골마을에서 그 집과 나무에 얽힌 연유를 듣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사진으로 담아온 그 집과 나무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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