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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소확행

by 비르케 2018.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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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칼럼에 '소확행'이란 단어가 있었다. 이제는 '욜로'의 시대가 가고 '소확행'을 이야기하나 보다. 소확행은 '작지만(小) 확실한(確) 행복(幸)'의 준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오는 말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과연 무엇일까? 한때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시골 어느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손에 흙을 묻히고 하루하루를 소소하게 도란도란 사는 걸 보노라면, 행복이란 게 어떤 건지 조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소탈한 삶 속에서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미소가 유난히도 환하다. 그들의 소확행이다.

나의 소확행은 그들보다 더 단출하다. 그들은 안락한 삶을 택하고 그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말하지만, 나의 소확행은 그나마 그냥 '커피'다.

한 5년 전 커피머신을 선물로 받았다. 평소 녹차를 즐겨 집에는 다기 세트들도 즐비한데, 커피머신을 선물 받은 이후 나의 입맛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까지 즐겨 마시던 녹차 대신 연일 커피를 달고 살게 되었다. 커피머신이 만들어 주는 커피 한 잔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핸드드립보단 못 하겠지만, 버튼을 누르는 즉시 원두를 갈아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니 내게는 하루 중 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최근 한국에 온 어느 일본 학자는 서울의 커피 값에 놀랐다. 일본보다도 더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 위기에 대한 근거 자료였지만, 그렇다고 일본으로 건너가 커피를 마시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커피 한 잔이 자신의 삶에 주는 만족이 5천 원 이상이라면 이제까지 그 커피를 마셔왔던 사람들이 커피숍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우리집 커피머신도 5년을 넘어가니 자잘하게 고장을 일으킨다. 이 머신이 완전히 고장나버리고 나면 다시 재구매를 할지 어쩔지 생각해 보았다. 마치 아이를 안듯 안고 AS센터를 들락거리는 일도 이제는 귀찮아 다시 구매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머신이 고장나는 날, 나는 나의 소확행을 위해 이름난 커피숍에라도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손수 핸드드립이라도 시도해 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입맛을 돌려 다시 녹차로 돌아갈 것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론을 알 수 없다.

소확행은 그렇다. 누군가의 소확행은 언젠가 또 본질이 바뀔 수도 있다.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보드라운 흙에서 느끼던 감사가 내일은 버거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흙을 만질 수 있음에 행복해 하는 일, 그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소확행을 누릴 수 있고 누릴 수 없는 각자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커피숍에 앉아 있을 나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또 알겠는가, 커피숍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일이 나의 소확행이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부지런히 달려온 삶을 좀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든 필요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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