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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

by 비르케 2018.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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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감자가 올라왔다. 감자알들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탕 속으로 들어가 노곤노곤한 몸을 푹 담갔다. 그동안 땅속에서 고단했던 삶이 고이 삶아졌는지 어쩐지 젓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아프다고 안 하는 걸 보니 삶아 졌다.

 

보기만 해도 예쁜 감자들이다. 올해 감자는 흔히들 '금자'라고 한다.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는 감자인데, 올해는 유독 작황이 안 좋다. 시골 어머님이 혼자몸으로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라, 도착하자마자 삶아 껍질을 까서 소금에 찍어 입 속에 넣었다. 포슬포슬 부서지는 식감에 뜨거운 열기를 호~호~ 내보내며 그 자리에서 세 알의 감자를 맛있게 까먹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안 받으신다. 또 밭에 가 계신가 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두 분이서 농사짓던 논밭 일부는 팔아 형편 어려운 자식 도와주고, 또 일부는 소작을 맡기셨다. 그래도 집 앞 텃밭은 여전히 어머니 차지다. 여든 된 연세에도 감자며 고구마며, 깨 농사까지 지으신다. 굽을 대로 굽은 허리, 관절이 어긋나 뒤틀린  두 손을 볼 때면 그렇게 만들어진 이런 농작물 하나 하나가 내겐 참으로 큰 혜택이지 싶다. 

 

그런데 그런 마음과는 달리, 아무리 봐도 나는 좋은 며느리는 못 된다. 하얀 도화지 같은 그 분 마음에 거친 채색을 하나 더했으면 더했지, 고운 색을 입혀드리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인근 사람 대부분이 도회로 떠나고 빈 동네에 홀로 남아계시는 어머니에게 자주 안부를 묻는 일에도 야박한 나다. 귀가 어두워지셔서 통화가 매끄럽지 못 하고, 평생을 소탈한 촌부로만 사셔서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실 때도 있다. 그러면 어머니의 말로 소통하는 법도 알아야 할 텐데, 살면서 어머니께 그런 점이 많이 서툴고 게을렀다.

 

아무리 못난이 자식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부모가 있어 감사할 날이 오기 마련이다. 어른 역할만 줄창 해야 하는 이 나이에, 오히려 철마다 내게 먹을 것을 내주시는 그 분의 마음이 한없이 고마울 때가 있다. 그래서 해년마다 오는 김장 김치도,배추 꽁지에 국물까지 버리지 않고 다 먹는다. 어머니가 버무린 것은 김치 양념뿐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허겁지겁 세 알의 감자를 먹고 나니 갑자기 목이 메여 왔다. 고구마도 아닌 것이, 왜 내 목구멍을 이리도 틀어막는 것인지, 노인네가 거동이 불편하다는 소리를 전해듣고난 다음이라 이렇다. 폰 너머로 들리는 벨 소리는 마냥 허허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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