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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겉만 번드레한 도시재생

by 비르케 2018.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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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사회 문제를 다룬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장면을 캡쳐해 보았다. 화면 왼쪽으로 "노인 빈곤의 현주소"라는 주제가 큰따옴표까지 써서 강조되어 있지만, 정작 이 화면을 보면 노인 빈곤의 현주소는 밝고 희망적으로까지 보인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사랑이 넘치는 벽화들 속에서, 이 곳에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이 있을 거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벽화 사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낙후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 화면 속 집들처럼 재생사업을 통해 지붕도 새로 개량된다. 낡고 무너져가는 지붕을 뜯어내고 산뜻한 지붕을 얹는다. 그 결과 귀신이라도 출몰할 것 같던 동네의 분위기도 바꾸고, 어떤 곳은 일부러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변신해 고요한 동네에 활기마저 감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곳에 빈곤이 존재한다면 결국 이러한 방식의 재생은 무모할 뿐이다. 사업의 결과가 오히려 본질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사람의 '빈곤'은 눈치 채기라도 쉽지, 이렇게 치장을 한 동네의 빈곤은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독일 수 있다.

 

현 정부의 핵심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대통령의 임기 내 연간 10조원씩을 투입해 전국 500여 곳의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간 10조씩, 5년간 50조원이다. 이를 통해 구도심은 창업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노후 주거지는 정비사업을 통해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저소득층인 원주민이 거주지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전면 철거를 지양하고 현지개량 방식으로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미 수많은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했으니 다른 방식으로 주거 개선을 하겠다는 데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문제는 집주인은 그런 혜택이 보장이 된다 하더라도 세입자로 살고 있는 진짜 빈곤층은 오히려 더욱 안 좋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능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무조건 벌이고 보는 일이다. 50조원이면, 한 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전 정부의 사대강 사업보다 더한 예산이다. 페인트칠만 하고 지붕만 바꿔주는 일에 그치지는 않을 테고,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하는 개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예산도 정확히, 쓰임도 명확해야 한다. 또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정부든 민간이든 확실히 짊어져야 할 것이다. 주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집주인만 안 떠나면 다가 아니다. 꽃단장을 마친 동네에 취약 계층은 내몰리게 되어 있다.

 

무조건 개발이 능사는 아니다. 벽화로 단장한 동네의 뒷방 한 곳에는 쓸쓸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빈곤한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돈이 가는 곳에 결코 그들의 존재가 망각되어선 안 된다. 제목과 장면이 어긋난 사진 속 화면에서 처럼, 겉만 번드레하고 속은 썩은 모습 그대로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 다수를 위한 것인지, 성과 지향적인 정책은 아닌지, 필히 재고, 삼고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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