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글..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by 비르케 2018. 7. 23.
300x250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재미와 반전의 묘미를 잘 갖추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을 영화화 또는 드라마와 하려는 시도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가장 최근 영화는 7년 전 '미아 와시코브시카' 주연으로 제작된 바 있다. 다 아는 스토리인데도 볼 때마다 재해석되어 새로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원작이 가진 우수성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제인 에어'에는 주인공 두 사람을 갈라놓는 갈등 요소들이 많다. 주인공 제인과 로체스터 사이에는 신분이라는 벽이 있었고, 이를 넘어서자 블랑슈라는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로체스터와 혼담이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 혼담이 사랑이 아닌 돈을 탐한 결과임이 드러나자 로체스터는 다시 제인에게로 마음이 향한다.

 

"제가 못 생기고 출신까지 낮다고 저를 놀리시는 거에요?"

제인의 말은 19세기 여성으로서, 그것도 신분이 낮은 여성으로서는 어쩌면 용기 있는 외침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에 다시 진전이 시작되었지만, 이번에는 결혼식에 쓰기 위해 고이 넣어둔 베일이 찢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밤마다 들려오는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와 찢어진 베일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 건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식 당일이었다. "누구든 이 결혼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으면 여기서 말하시오, 아니면 침묵하시오." 라는 신부의 말에, 메이슨이란 남자가 이의를 제기한다. 로체스터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던 것.

 

정략 결혼으로 원치 않는 혼인을 한 채, 광인이 되어 있는 아내를 둔 로체스터, 그리고 아내 있는 남자와 함께 살 수 없는 제인은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다른 삶을 살며 손필드에서의 기억은 잊어가던 어느 날, 제인은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환청을 듣는다. 문득 그가 몹시 그리워진 제인은 결국 로체스터를 찾게 되는데, 저택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폐허로 변해 있고 로체스터는 쇠락한 채 팔 하나를 잃고 눈도 멀어버린 모습이 되어 있다. 광인이 된 아내가 빚은 참극이었다.

 

원작을 초등학생(국민학교)때 읽었으니, 어린 소녀가 읽기에는 우여곡절도 많고 스토리도 풍부했다. 그러나 스토리 뿐 아니라 온 감각을 동원한 듯한 작가의 능숙한 표현기법이 읽는 사람에게 더한 여운을 준다. 물론 초등학생이 표현 기법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지만, 그때도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이 그 전에 읽던 책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가장 가슴을 졸이며 본 장면이 당시 어린 내게는 다음의 장면이었다.

 

숙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손필드 저택으로 돌아오던 날, 이제는 숙모와의 관계도 정리되었고 정말로 손필드가 자신이 머물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원에서 풍겨오는 낯익은 향이 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로체스터가 피우는 담배 냄새다. 담배의 종류도 여러 가지라서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담배, 시가, 권련 등 익숙한 단어가 아닌 생경한 단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것이 어떤 종류이고 어떤 향일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로체스터가 피우는 담배를 통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제인으로 하여금 그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게 하고, 나아가 독자도 그의 존재에 반응하는 제인의 모습을 더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원에 있는 로체스터의 모습을 보고서야 제인이 그를 피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로체스터의 향이 나는 순간부터 그녀의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지고, 그녀가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 할 때 독자도 함께 그 두근거림을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아닌 책으로 봐야 가슴 졸일 수 있는 부분이고, 작법상 시각적인 접근보다 훨씬 뛰어난 장면이지만, 어릴때 그토록 가슴 졸이던 그 장면을 최근 본 책에서는 간단히 축약해 서술하고 있어 못내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그렇게 몸을 숨기는 순간, 이미 멀리서부터 그녀가 오는 것을 지켜보았을 로체스터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잘 다녀왔어요?" 식의 인사가 아닌, "이것 봐요, 나비가 참 아름답지 않소?"라고, 마치 애초부터 함께 산책을 나오기라도 한듯 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건다. 물론 어떤 말을 걸었는지 대화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대화가 그런 식으로 오갔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제인은 그와의 산책에 동참하게 되고 그것이 본격적인 사랑의 시작이었다.

 

제인 에어가 내게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그런 방식의 독자를 휘감는 미려한 서술 때문이다. 꼭 말이 아니어도 독자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제공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숙모에 의해 억울하게 붉은 방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어린 제인의 울분을 독자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한다. 붉은 방은 삼촌이 숨을 거뒀던 방이다. 어린 소녀에게, 누군가 병으로 고통 받았고 결국 죽어나간 방에 갇히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낯설고 암울한 집에서, 가장 있기 싫은 방에 갇힌 주인공의 모습에 그 어떤 독자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이 멀어 있는 로체스터를 발견했을 때, 제인은 그에게로 곧장 달려가 안기지 않는다.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인이 온 줄로만 아는 그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가 그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제인, 당신이요?"하고 로체스터가 물때까지, 그녀의 몸을 만져서 그가 그녀를 확인할 때까지 그녀는 조용히 그의 곁에 있다. 제인을 알아볼 때까지 독자도 숨을 쉴 수 없는 긴장의 도가니에 갇히고, 결국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 샬럿 브론테는 아버지의 눈 수술을 옆에서 간호한 적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답답함을 소재설로 잘 승화시킨 경험이기도 했을 것이다.

 

샬럿 브론테 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이 대부분 글에 조예가 깊었다. 그들은 어릴 적에 인형놀이를 즐겨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인형놀이 경험은 대다수 여성들이 다 갖고 있을 테지만, 브론테 가문 아이들의 인형놀이는 그냥 놀이가 아니라 훗날 소설의 모티브로 발전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기숙학교에서 맞았던 고단한 삶 또한 그들에게는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제인 에어'에 나오는 끔찍하리 만큼 암울한 기숙학교의 모습도 그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그처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언니 둘과 남동생, 여동생, 끝내는 샬럿 마저 모두 단명하는 바람에 능력을 펼칠 기회는 길지 않았지만,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동생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19세기 작품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과감하고 흡인력 강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제인 에어는 다른 출판사본으로 바뀌었고, 느낌도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일례로, 로체스터에 대해, 그의 아내였던 버사에 대해, 또 제인의 미래의 모습들까지 그들 각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그들 각각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가지치기처럼 생성되었다. 그동안 연달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수많은 '제인 에어' 속 여주인공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얼마나 유연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지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었던 '제인 에어'와 어른이 되어 읽은 '제인 에어',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는 '제인 에어'는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2011년 '미아 와시코브시카' 이후 또 다른 제인 에어를 더 나이가 들어서도 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스크린을 사로잡을 또 다른 제인 에어의 모습은 어떨지 적잖이 기대가 된다.

반응형

'책..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이쇼나곤과 향로봉  (0) 2018.08.20
광장 - 최인훈  (0) 2018.07.24
추억이 담긴 나의 책, 제인 에어  (0) 2018.07.22
형님을 생각하며 -연암 박지원  (0) 2018.06.26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2) 2018.06.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