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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쌉쌀한 맛이 일품, 프랑켄 와인

by 비르케 201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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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 독일에서 가져온 화이트 와인 두 병이 집에 있다. 둘 다 프랑켄 지방의 와인으로, 그중 한 병은 직접 구입한 것이고, 나머지 한 병은 귀국하기 전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둘 중 어떤 게 내가 산 것이고 어떤 게 선물 받은 것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프랑켄 와인의 두드러진 특징은 '복스보이텔(Bocksbeutel: 아랫부분이 불룩한 모양의 병)'이라고 불리는 둥그런 병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굳이 마시지 않고 장식만 해 두어도 다른 와인과 차별화되니 그저 눈요기만 했었는데, 이번에 둘 중 하나를 오픈하게 되었다. 한 잔 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에 더운 공기가 닿아 서리가 앉아 있다. 와인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 했는데,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오픈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같은 프랑켄 와인이지만, 품종은 서로 다르다. 왼쪽은 바쿠스(Bacchus), 오른쪽은 리슬링(Riesling), 둘 다 달지 않은 쌉쌀한 맛이다. 그나마 왼쪽이 '할프트로큰(halbtrocken=> half dry)'이라 좀 더 단맛이 있고, 오른쪽은 단맛이 거의 없는 '트로큰(trocken=> dry)이다.

 

 

 

 

독일에 있을 때 포도원 산책을 하다가 찍어둔 사진에, 포도 품종 중에 하나인 질바너(Silvaner) 관련 설명이 있다. 표지판 사진을 좀 더 확대해서 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다.

 

"알맹이가 꽉 들어찬 연두 빛깔 포도가 우리에게 좋은 와인을 선사한다. 무르익은 배(pear)와 진한 건초 향을 떠올리게 하는 질바너는 마르멜로와 꿀의 향기를 풍긴다. 질바너는 특히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는 이 곳 폐각 석회암 지대에 잘 맞는 품종으로, 채소, (흰 살) 고기, 생선, 치즈를 비롯, 어떠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info: 질바너는 1665년에 수도원장 알베리히 데겐(Alberich Degen)이 오스트리아로부터 프랑켄 지역에 품종을 들여왔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생각이 없다면 오스트리아 질바너를 심지 않으면 된다."

 

질바너로 만든 와인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표현이다. 쌉쌀한 프랑켄 와인을 떠올려 보면 어떤 맛을 두고 그런 표현을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안내판에서 보다시피, 폐각 암반 지형에서 나는 와인들은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해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거대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을 만들 포도 품종도 수도원장이 지역에 맞게 들여올 수 있었던 것다.

 

 

 

 

위의 사진들은 모두 프랑켄 와인의 대표적 생산지인 뷔르츠부르크(Würzburg)의 란더자커(Randersacker)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독일은 와인을 생산하기에 일조량이 많이 부족한 나라기 때문에 되도록 큰 강을 끼고 와인 산지가 조성되어 있다. 45도 각도로 가파르게 놓인 비탈에 심은 포도나무는 강에서 반사되는 햇살을 아낌없이 흡수한다. 란더작커에도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마인강가 햇볕 잘 쬐는 곳에 포도 작목을 심었다.

 

있는 햇볕, 없는 햇볕을 이렇게 다 끌어 모아도, 충분한 햇볕이 늘 그리운 독일의 포도는 여전히 당도가 낮고 신 맛(산도)이 강하다. 그러니 프랑켄 와인의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씁쓸한 시음으로만 끝날 수 있다. 

 

내게서 프랑켄 와인을 선물 받고 그 맛에 대해 호평을 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산지 가격은 비싼 편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술이기 때문에 귀국 때가져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음에도, 어렵사리 건네면 이런 반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난 레드 와인이 더 맞는 것 같아."

 

맛이란 기억과도 같은 것이기에,

쓴 소주가 때로 달게 느껴지듯이,

트로큰 한 프랑켄 와인도

기억에 따라서는 다른 맛일 수 있음을

결코 모르는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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