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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뷔르츠부르크를 추억하다

by 비르케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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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추억을 만들고,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기억을 잊어버린다. 또는 잃어버린다.

 

그게 사람임에도,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과거를 덜 잊어 때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게 나다. 어릴 적에도 나는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고, 지나간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지나간 일들을 되뇌는 것은 젊은이가 할 짓이 못 된다."

나는 소위 애늙은이.. 였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세월과 더불어 내 기억들도 분명 퇴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또 어디선가 예전처럼 비슷한 길과 느낌과 냄새를 되뇐다.

 

독일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년 전 살던 곳을 돌아본 적이 있다.

 

10년 전 살던 곳에 접어들어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긴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대로 놓인 골목 골목들, 너무도 익숙하게 되짚어가게 되는 모퉁이 모퉁이들 속에, 그때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가 세 들어 살던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내가 묵던 집 앞에서도 서성이다 이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집 주인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다시 10년 전의 나를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는 일이 순간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냥 그 집을 바라만 보다 돌아섰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추억이란 게 그저 기쁨만은 아닐 것이다. 설령 좋은 기억이라도 그것이 현재가 아닌 과거란 사실에 슬플 수 있다.

 

내 집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낯섦...

 

언젠가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나는 또 이곳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늘 다니던 발 아래 계단에 새삼 놀라듯, 순간 순간 어느 공간에 서 있는 스스로에게 문득 놀라곤 한다.

 

그래, 날마다 오르내리는 계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면 층계에서 다칠 일도 없다. 불현듯 계단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이 이내 제 페이스를 잃고 휘청거리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길 위에서 생각한다.

 

'아, 내가 여기에 있었지.

언젠가 나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돌아볼 나의 현재가

바로 여기에 있었어.'

 

 

 

지금으로 부터 딱 10년 전인 2008년 어느 날에 남긴 글이다. 당시에 나는 독일에 세 번째로 입국했다. 세 번 모두 학생 신분으로 입국했는데, 세 번째는 아이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그 전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존재했다.

 

지금보다 10년 전의 이야기지만, 2008년 당시로서도 10년 만에 찾은 독일이었다. 1998년 유학하다 떠나온 뷔르츠부르크를 다시 목적지로 선택하고 떠난 길이었다.

 

독일에 관한 나의 기억을 이쯤해서 하나 둘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여유가 생긴 요즘이라서.. 기억에서 많이 멀어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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