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전통 연못의 모습, '방지형' 연못

by 비르케 2016. 8. 18.
300x250

분양을 마치고 한창 공사중이던 아파트에서 고려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유적이라는 이유로 아파트 공사가 지연되었다. 결국 동 하나가 더 들어갈 수 있는 부분에 커다란 연못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연못 아래쪽으로는 주차 공간을 마련할 수 없어 전체 주차공간이 협소해진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분양을 받았던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지만 연못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문화재가 아파트 안에 있으니 긍지를 갖자 하면서 멋진 연못을 기대하고 고대했다. 그러나 아파트 중앙에 들어선 연못은 동그랗고 아기자기한 형태가 아니었다. 네모반듯한, 아연실색할 만큼 단조로운 모양이었다. 귀추를 모으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연못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어떤 이는 연못이 아니라 축구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입주민들은 수도 없이 연못에 관한 민원을 넣었지만 시의 답변은 일관되었다. 그 연못이 고려시대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것이다.

 

- 입주 직후 모습 -

 

- 재공사 모습 -

 

한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실제 있던 이야기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전통 연못이 네모 반듯한 형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지형'이라 불리는 네모진 형태에, 그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이 존재한다. ‘천원지방(天元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동아시아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위의 연못도 재공사 후 가운데에 동그란 섬을 가지게 되었다. 주자(朱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도 이런 연못을 볼 수 있다.

 

반무방당일감개 半畝方塘一鑑開  네모난 작은 연못이 거울처럼 열려

천광운영공배회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

문거나득청여허 問渠那得淸如許  묻기를, 너는 어찌 이토록 맑은고

위유원두활수래 爲有源頭活水來  근원이 있어 (源頭) 맑은 물이 샘솟기 때문이지

 

최근 현충사 연못이 재단장을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왜색 논란으로 말이 많던 연못이기에 이번에 예산을 확보해 최대한 전통 방식으로 재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 방식을 내걸면서도, 지형 등의 문제 때문에 방지형의 연못을 만드는 일은 힘들다고 한다. 방지형은 아니지만 돌을 안쪽으로 쌓아들어가 최대한 방지형에 가깝게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연못의 테두리 부분이 참 어색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연못이 그랬다. 현충원 연못도 재공사에 또 재공사를 하지 않으려면, 일단 시공에 앞서 고려해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거라 생각된다.  

반응형

'하루 또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뜩했던 물놀이 기억  (2) 2016.08.22
참기름과 어머니 생각  (4) 2016.08.20
해바라기, 다시 해를 보다..  (2) 2016.08.11
한정식 코스, 하려면 제대로 하자  (0) 2016.08.09
바다같이 베푸는 사랑  (2) 2016.08.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