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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디아스포라의 그늘, 현실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by 비르케 2016.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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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날씨가 하도 좋아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 한적한 곳에 다다랐다. 아직 공사 중인 곳이라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인데, 너무 멀리까지 온 건가 싶어 돌아오려다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어떤 여자가 초등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를 마주한 채 차가운 표정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직 어린애가 그런 공공장소에서 야단을 맞고 있는지 참 안타까웠다. 그런데, 엄마로 보이는 그 여자의 손에 들려있는 게 참 기가 찬다. 각목이었다. 주변 공사현장에서 주워온 것 같았다. 

 

도저히 그냥 돌아올 수 없어, 지나가는 것처럼 그 산책길을 따라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계속 나아갔다. 여차하면 신고할 생각이었다. 그 순간 그 여자의 날선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톤만 높았지, 어딘지 어눌한 발음이다.

 

"거짓말 하지마! 선생님이 안 왔다고 했어!"

 

학원 이야기인 건가... 언뜻 보니 여자는 인근 식당에서 일을 하는지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아들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차렷 자세로 그대로 서 있다. 아무리 그래도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쫄아들어 있는 아이가 가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그 엄마가 아이를 향해 뭐라 하며 각목을 공중으로 치켜든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목이 더 움츠러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절로 난다.

 

"아유~ 그러지 마시고 말로 하세요~"

 

내 말에 무안했음인지, 아니면 아이에게 엄포만 놓으려 했다가 누가 끼어드니 어이없었음인지, 그 엄마가 그냥 피식 웃어버린다. 아이가 곁눈으로 나를 본다. 그런 엄마보다 나를 더 경계하는 눈빛이다. 그때야 자세히 보았다. 엄마가 동남아쪽 사람이고, 아이도 엄마를 닮았음을.

 

돌아오는 길에 왠지 돌덩이 하나가 나를 누르는 것 같은 무거움이 느껴졌다. 아이의 눈빛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다문화 가족', 말을 참 좋은데, 다문화 정책이 올바로 서지 않으면 다가올 미래 사회는 그로 인해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엄마가 아이를 겁줄 요량으로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은 그들 나라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빗자루 몽둥이를 피해 달아나는 아이와 그 뒤를 엄마가 곧 죽일 듯이 쫓아가는 장면은 그다지 낯선 장면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른데도 그런 장면이 연출되니 한편으로 걱정스런 생각이 든다.

 

독일에 있을 때 이런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전에 외국인 신부를 돈으로 사는 문제를 두고 말이 많았고, 그 이후 2세들의 문제, 또 자국민과 결혼한 여성들, 즉 '외국인 처'의 처우 문제로 많은 고심을 했다. 그때는 그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 했다. 하지만 독일이나 기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난민을 포함, 이른바 디아스포라 상태에 놓여 있던 이들의 삶이 현재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른바 '외로운 늑대'를 생성케 하는 요인 중 하나도 이런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회 문제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다문화 아이들 중에는 한글과 간단한 셈도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 그뿐 아니라, 한국말이 서툰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사회적인 문제가 안 될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최근에는 또 중국인들의 우리나라로의 해외이민 문제까지 더해져 정말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해, 결국 가정에만 안주하게 된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서투른 한국말을 그대로 배운다. 심지어는 학교에 제대로 가지 않고 가정에만 머무르는 아이들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더러,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멍이 들어가고 있다. 설령 정부에서 교육비를 지원한들 오늘 본 그 아이처럼 수업에 잘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다문화 지원을 그만두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실효성 있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 또한 독일에 있을 때 '외국인 혐오증(Ausländerfeindlichkeit)'을 가진 이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던 만큼, 다문화 가족이나 동남아인들을 무시하는 취지에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에 끼워 맞춰,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돈으로 신부를 맞아오는 일부터 우선적으로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가정을 이룬 다문화 가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실효성 면을 세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고, 그들이 가정에만 안주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해 나갈 수 있는 지원책 마련, 또 그들의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지원금이 아닌, 실질적이고 보다 효율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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