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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술 마시기'- 정약용이 권하는 한 잔

by 비르케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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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신문에서 괜찮은 걸 건질 때가 있다. 정약용의 이 시는 이년 전 신문에서 찢어내 보관하던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한번 더 읽기 위해 이런 걸 일부러 오려서 보관해도 다시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웬만한 건 그냥 식탁 근처에 두었다가 대충 보고 버리곤 하는데, 이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정약용을 참 좋아한다. 그의 학자다움이 좋고, 청빈함이 좋다. 가족을 아끼는 인간 정약용도 좋다. 그런 정약용이니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만 하다. 그는 정조의 사람이었고, 정조가 선왕의 신하들과 그 숨막히는 환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원화성을 계획할 당시에도 거중기를 고안해 화성 축조에 큰 공을 세우고, 정조가 물길을 편히 건너갈 수 있도록 배다리도 고안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은 그와 그의 가족을 가시밭길로 몰아 넣었다.

 

정약용은 경기도 광주부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남양주다. 남양주 내 신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지역에 '다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맨 큰형인 정약현만 이복지간이고, 둘째형 정약전, 셋째형 정양종, 넷째 정약용은 친형제간이다. 정조의 죽음 이후, 정순왕후(영조의 비)가 주축이 된 천주교 탄압이 거세지면서 정약종은 사형에 처해지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되었다.   

 

정약용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지만, 2남 1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생전에 세상을 뜨고 만다. 특히 막내인 '농아'의 죽음에 그는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을 느꼈다. 자식을 여럿 앞세웠지만, '농아'는 그가 유배지에 있을 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막 알기 시작할 무렵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간과 폐를 도려내는 아픔'이라 표현했다.

 

"네가 세상에 왔다가 세상을 뜬 것은 겨우 삼 년인데, 그 중 두 해를 나와 떨어져서 살았구나.... 한양 가는 인편에 소라 껍데기 두 개를 보내 네게 전해 달라 했지. 그런 후로 너는 매번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껍데기를 찾고, 없으면 실망했다지. 네가 죽고 나서야 소라껍데기가 도착했으니 슬프구나...

 

그는 농아를 보내는 아픈 마음을 광지(죽은이와 함께 묻어주는 글)를 통해 드러냈다. 농아(農兒)... 공연히 세파에 흔들리지 말고 농사나 지으며 편히 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준 막내... 그런 막내가 아버지를 보지도 못 하고 앓다가 죽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달밤에 술 마시기'란 시는 언제 쓴 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학자로, 시인으로, 과학자로 살다간 다재다능하고 기개 넘치는 그가 쓴 시라서 더욱 한 잔 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시다.

 

둥근 달을 보며 한 잔 하고 싶으면 그때가 타이밍이라는 그... 더 미루면 달이 이지러질 것이란다. 달마다 보름은 딱 한 번, 그 보름 전후로 둥근달을 본다고 며칠 더 가정한다 해도, 날씨때문에 그나마도 한 달에 한 번 보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365일중에 휘엉청한 달 아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날은 어쩌면 열흘 남짓이나 될까... 그의 말대로 라면, 달이 뜬 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말이니까 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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