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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소시지 반찬을 먹으며

by 비르케 201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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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아들 저녁으로 소시지 반찬을 해주었다. 내 어릴 적에는 부잣집에서나 먹던 식재료지만, 요새는 하도 안 좋다고 하니 햄이나 소시지는 되도록 안 사게 된다.  며칠 전 마트에서 우연히 눈에 띄는데, 내가 먹고 싶은 마음에 집어들었던 게 사실이다.

 

절반을 잘라 저녁 반찬으로 계란을 입혀 부쳤다. 주방을 지나치면서 맛있겠다고 바람잡이까지 하더니, 다른 반찬보다 어쩐지 손이 덜 가는 것 같아서 먹어보라고도 권하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먹고 있어요." 하던 녀석이었다.

 

밥을 거의 먹고도 소시지 반찬은 여전히 접시에서 뻘쭘하게 남아 있는데, 그때 아들이 한다는 말이,

"엄마 술안주로 좋겠네요."

 

요새 잠이 잘 안 와서 캔 맥주 하나씩을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먹으라고 아들이 일부러 소시지 반찬을 덜 먹은 것이다. 엄마인 내가 기름에 부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도, 어쩌면 '남으면 안주로 먹어야지.'하는 나의 생각까지도 꿰고 있었을 녀석이다. 녀석은 정이 많아 일부러 그러고도 남는다. 

 

 

그렇게 남은 반찬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을 땄다. 언젠가부터 잠이 잘 안 오고, 새벽이면 일찍 깨게 된다. 요새 신경이 쓰이는 일이 좀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나이를 들어가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일찍 깨는 것과는 별개로 맥주 한 캔이면 잠을 청하는 데는 그래도 도움이 꽤 된다.

 

오랜만에 소시지부침을 먹자니 마음마저 풍성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 도시락에 소시지 반찬을 담아온 친구들이 반에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아이들의 도시락엔 늘 김치, 부추김치, 깍두기, 갓김치, 알타리김치, 나박김치 등이 순번을 바꿔가며 두어 가지 씩 들어 있을 뿐, 계란도 흔친 않았을 때다.

 

소시지 반찬을 싸 온 친구의 반찬그릇에 손을 댈 때마다 왜 그렇게 미안하던지, 그래도 한참 먹성 좋던 때라서 그런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마구 손이 가던 기억, 집이 부자인 그 친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깨작거리던 기억이 나서 맥주 한 잔 하며 혼자 또 웃게 된다. 그때 그 친구들 생각도 나고, 공부하고 있는 고딩 아들도 고맙고, 여로 모로 미소가 차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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