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정보..

장사 아무나 못 한다

by 비르케 2018. 6. 7.
300x250

 

가족들과 가끔 찾곤 하는 단골 파스타 집이 있다. 내가 맛 본 그 어떤 파스타 전문점 보다 맛이 탁월한 데다, 녹음에 둘러싸인 공간이라 갈 때마다 마음이 호젓하니 참 좋았다. 집에서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그 곳에 가면 한 번도 실망을 한 적이 없다. 늘 충만한 여유와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파스타의 진한 맛으로, 면 종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게 최고의 장소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그곳을 찾았다. 점심이 늦어진 탓에 많이 출출해서 기대심리 100퍼센트로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이상하게도 차가 별로 안 보였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가 하면서도, 관리가 안 되어 있는 정원이 낯설다. 예전에는 싱싱한 꽃들로 가득하던 곳이었는데, 꽃들이 시들시들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주인이 바뀌었나?" 

 

에이, 날이 더우니 그렇지 하며 가족들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뭔가 달라졌다. 전에는 젊은 직원이 주문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분이 다가와 메뉴판을 놓고 간다. 메뉴판을 보니 커피와 차만 있다. 역시나. 지난번 주인은 작년 말에 일을 그만두었다 한다. 그녀는 "그냥 가셔도 돼요." 하며 힘없이 웃는다.

 

"아, 저희가 점심을 아직 못 먹어서..."

말끝을 흐리며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마당에 나오니, 오래된 나무들이 초연하게 서 있다. 초록은 우거지고 늘 보던 보리수는 올해도 빨간 열매(사진)를 맺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그곳에 이제는 적막이 감돌았다. "그냥 가셔도 돼요.", "괜찮아요." 하던 쓸쓸한 음성이 내내 귓전을 맴돈다. 그녀는 왜 파스타 집을 인수하고 카페로 바꿨을까,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른바 '맛집'을 인수했으면 일부러 찾아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업종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더군다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거기까지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거라고... 업종 변경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터였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내 주변에 유독 작년 말 사업을 철수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긴 사람들이 꽤 보인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사업을 철수한 쪽이 아니라 인수한 쪽인데, 공통점이 그전까지 잘 되던 매장을 인수한 후에 손님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다들 그런 일에 초짜다. 심지어 많은 손해를 감내하고라도 폐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잠이라도 편히 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신도시에 살면서 이상한 점을 관찰하게 되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일부 상권에서만 벌어지는 일임을 전제한다. 어느 골목에 어떤 어떤 가게들이 거점을 형성한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가게인데도 늘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런 상권이 가까이 있으니 입주민으로서도 좋다. 주인 성격도 참 쾌활하고 맛도 좋다. 유명 연예인 싸인회도 간혹 하고, 이벤트도 주기적으로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짧게는 일 년 정도 후에 이런 가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던 기억,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상가를 찾는 사람들도 뜸해지고 점차 적막감이 감돈다. 그 속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부동산 영업을 하는 사람도, 상가를 가져본 사람도, 장사를 해본 사람은 더더욱 아니기에, 그저 현상만을 볼 뿐, 그런 이상한 기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엄청난 매출을 보이던 가게들이 발을 빼는 이유는 뭘까?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좋은 상권으로 이동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 자금을 정리할 때인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상권들을 돌며 장난을 친다는 "그들" 때문인지, 북적이던 가게를 인수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의 표정을 그냥 지나치자니 맘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여러 지표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삶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점칠 수 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사도 하던 사람이 해야 한다. 잘 되는 곳이라고, 목이 좋다고,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냐고 경험 없이 덤빌 일이 결코 아니다.

반응형

'칼럼..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기준금리 인상  (0) 2018.06.15
겉만 번드레한 도시재생  (0) 2018.06.09
빼곡한 글쓰기의 압박  (0) 2018.05.26
어느 타일공과의 대화  (0) 2018.05.25
명산 조망이 한눈에, 파인뷰 아파트  (0) 2018.05.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