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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형님을 생각하며 -연암 박지원

by 비르케 201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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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가끔 하시는 말씀이 있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 울엄니 얼굴이 보여"

 

그때마다,

"할머니랑 엄마 얼굴은 하나도 안 닮았는데."

하며 어깃장을 놓으면서도, 엄마의 모습에서

나 또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도

 엄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를 닮아 다들 쌍꺼풀이 진한 동생들과 달리

 나는 태생부터가 엄마 쪽을 많이 닮았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게 될 것만 같다.

 

"세월 갈수록 내 얼굴에서 니네 외할머니 얼굴이 보여."

하고 던지는 말에, 내 아이들은 또

내게 어떤 말로 대답을 삼을까.

 

 

 





먼저 간 형을 추억하는 연암 박지원의 칠언절구다.

 

형 얼굴 속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형을 보면 됐었는데,

이제 형마저 죽고 나니, 형이 보고 싶을 때

어디에서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형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쓴 시다.

 

요새 세상처럼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선친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그간 형의 모습을 보며

마치 아버지도 함께 보는 듯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형이 먼저 세상을 뜨고 나자

이제는 아버지도, 형도 그 모습이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가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늙은 자신의 모습을 냇물에 비추어

아버지와 형을 떠올리는 일이다.

 

시에 나오는 '건몌(巾袂)'는 두건과 저고리를 지칭한다.

상투를 다시 틀어 올리든 관을 쓰든 머리를 가다듬고

옷 매무새를 갖춰 단정히 한 다음, 

냇물에 투영되는 아버지와 형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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