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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능소화, 새색시 같은 자태

by 비르케 2018.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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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르익으면서 여기저기서 능소화가 자주 눈에 띈다. 태양처럼 환한 빛으로 만개한 꽃봉오리들을 보노라면, 주홍빛과 초록이 만나 만드는 강렬함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마치 초록 바탕에 주홍 꽃을 붙여넣기한 듯 선명하다. 

 

주홍과 초록이 만나 만드는 색감은 '새색시' 같다. 옛날 여자들의 저고리와 치마에는 색깔이 정해져 있었는데, 새색시들의 차림이 주로 이런 색이었다. 어렸을 때, 신행 갔다가 인사를 온 친척 언니들이나 숙모들을 보면, 분가루가 묻어날 만큼 희고 뽀얗게 치장한 피부에 입술만 빨갛게 화장을 하고, 연둣빛 저고리와 빨간 치마로 한껏 도드라진 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 꽃처럼 눈이 부실 만큼 화사했다.

 

 

 

비 오는 와중에 정원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능소화가 눈에 들어와, 우산대를 어깨에 걸머진 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능소화는 덩굴을 뻗어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은 담장이나 벽에 기대어 심는데, 이곳에 있는 능소화는 나홀로 화단 중앙에 덩그라니 서 있다. 비로 인해 실루엣이 더욱 도드라진 채.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색상의 비주얼은 남다른데, 덩굴 식물이 담장이 아닌 정원 중앙에 덩그라니 서 있는 데는 아마도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꽃마다 탐스럽게 영글었는데 이렇게 막대 하나만으로 버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쩐지 새색시긴 한데, 지팡이를 짚고 있는 새색시 같다고나 할까. 

 

초록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얼굴에 살포시 분칠을 한 수줍은 새색시가 오늘따라 어쩜 이리 쓸쓸해 보이는지... 비가 와서일까. 그 비에 떨군 꽃송이들이 애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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