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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존폐 위기 자율형 사립고의 미래

by 비르케 2018.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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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4년이나 끈 오랜 줄다리기 끝에, 2014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자사고 지정 취소가 철회된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서울시 교육감으로 선출된 이후, 공약이었던 '자사고 폐지'를 실현시키는 일환으로 기존 자사고를 재평가하여 일단 6개 학교를 자사고에서 지정 취소한 바 있다. 자사고 폐지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철회했으며, 이에 따라 조 교육감이 교육부의 직권 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내건 바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일단은 자사고 폐지가 교육청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될 수 없음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곧 자사고 폐지 불가능을 뜻하지는 않는다. 즉, 교육청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던 것이지 교육부에서 자사고 폐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기싸움에서 교육부가 일단 이겼다는 결론인 셈이다.

 

지난 임기 내내 자사고 폐지 공약을 시작조차 하지 못 하고 발목이 묶인 조 교육감은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시 교육감으로는 유일한 케이스다. 이번에도 역시나 '외고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그의 목표이며, 다시 교육감으로 재선출 된 이상 그만큼 여론이 그를 지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기필코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서울에서 외고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실현되면 이는 곧 교육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하고 여론이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결론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자사·특목고 입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하는 중학생들과 고교 입시에 그다지 관심 없는 중학생들 중 어느 편의 수가 더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공부하는 아이들은 안 하는 아이들에 비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공부를 잘 해서 자사·특목고 입학을 준비 중인 학부모와 그렇지 않는 학부모 중 어떤 수가 더 많을까를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설령 공부를 못 하더라도 잘하는 아이와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기를 희망한다. 우수한 아이들이 자사·특목고로 빠져나가고 대부분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만 남아 있는 일반고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이 또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사고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물론 한 번 지정된 자사고라 해서 노력 없이 영원히 이름값을 누리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껏 이어온 정책을 숙고 없이 뒤집으려는 시도 또한 위험하다. 소위 8학군이라 불리던 국내 교육 일번지의 폐단을 막기 위한 방책이 자사고였다. 이를 없애는 것은 다시 8학군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니 서울 한복판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환영의 대상이다. 자사고 폐지를 간절히 바라고 조 교육감을 지지하는 부류에는 이들도 포함된다.

 

여론이 이러하고 이를 추진하는 이들의 의지가 강하니 결국 자사고 폐지는 수순을 밟게 되리라 예상된다. 시대가 변했고,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다 이른바 '창의형 융합 인재'를 원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창의형 인재'도 부단한 노력과 자율 경쟁을 통해 구현된다. 다른 나라 아이들 다 등교할 시간까지 자다 일어나 뒤늦게 학교에 가고,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하는 학교에서 아직 나이 어린 아이들은 과연 자발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어떤 창의적 활동을 할 것인가. 이러한 하향 평준으로 인한 평등이 과연 더 많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일까. 그것은 마치 '9시 등교'처럼 겉보기에만 한없이 달콤해 보인다. 그 달콤함은 오래 가지도 않고 다시 물리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때도 이를 걱정한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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