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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광장 - 최인훈

by 비르케 201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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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의 거목 최인훈이 타계했다. 그의 소설 '광장'은 그 자신도 '시대의 서기로 쓴 것'이라 표현했을 만큼 분단 당시의 상황을 잘 그리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광장'의 시대적인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다. 해방 이후 상반되는 이데올로기로 갈등을 빚던 수많은 지식 계층들이 월북을 택했고, 그 이후 전쟁이 터졌으며, 전쟁 후 포로 송환 문제가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전쟁 직후, 석방 포로 명준이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닌, 제 3의 중립국을 향해 가는 배 위에서 옛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철학과 학생이던 명준은 아버지 친구인 변선생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 집 아들딸인 태식과 영미는 명준과 비슷한 또래였는데, 명준은 자신과 달리 아무런 고민이나 방황 없이 안정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자신의 이익과 행복밖에는 관심 없는 남한 사회 전체의 밀실과도 같은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모습들이 그저 혐오스럽기만 한 그였다.  

 

그가 광장으로 대변되는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부터다. 온갖 모욕과 폭력을 거치면서 명준은 남한 사회에 더 큰 환멸을 느끼게 되고 결국 아버지처럼 그도 월북을 감행한다.

 

북한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만나고 그 속에서 살게 된 명준, 그러나 개인의 이상과 가치는 존중되지 않은 채 오로지 당에 복종하고 당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광장의 삶 또한 부조리의 극치임을 느끼게 된다. 반일 투사였던 아버지마저 북한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에게는 진저리가 난다. 그나마 그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은혜였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통에 은혜는 아이를 가진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명준은 북한군으로 서울 점령에 가담한다. 그러다 우연히 태식과 태식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남한의 속물 근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태식을 괴롭히며 그의 아내를 능욕한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 송환 문제가 대두되었다. 북한군 포로인 명준은 더 이상 광장만이 존재하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밀실의 추함을 택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립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다른 나라로 가는 선상에서 명준은 마스트에 앉은 갈매기를 보게 된다. 어미새와 새끼새인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은혜와 뱃속에서 죽은 딸인 것만 같은 환영으로 다가온다. 결국 명준이 그들의 곁으로 가는 데서 소설은 끝을 맺고 있다.

 

명준이 원했던 세상은 광장만 있는 세상도, 밀실만 있는 세상도 아닌, 그 둘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그것이 분리되지 않았던 세상이라야 그의 삶도 편할 수 있었을 것인데, 당시로서 명준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중립국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중립국을 택해 가는 이의 마음이라고 어디 편하기만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가는 것이 결국은 그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분단의 아픔을 여전히 겪고 있는 지금이지만, 요새는 한 나라 안에서도 애매모호한 광장과 밀실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 사이에 버티고 선 벽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 이 책,  최인훈의 '광장'이다. '광장'은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기에 쓰여 역사의 산 증인과 같은 역할을 했고, 세계 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인훈의 타계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향년 84세,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지나온 위대한 작가 한 분이 또 기억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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