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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시간을 거슬러

두 번째 독일 입성기

by 비르케 2018.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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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 독일행 중에 두 번째 독일에 갔을 때의 일을 기억해보려 한다. 포스팅 전에, 나의 기억이란 건 사진으로 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정도의 개인사적인 것이라서 특별히 볼 게 없음을 전제한다. 특히 이 이야기들은 이미 20년이나 묵은, 털면 먼지라도 일 것 같은 케케묵은 것들이라, 정보를 바란다면 더 더욱 그냥 패스해도 좋다. 이 포스팅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블로그도 일기의 일환이라..)


유학이었는지, 어학연수였는지, 어쨌거나 유학이라 우기며 출발했던 이십대 중반 프라이부르크 행에서 오래지 않아 귀국해버린 후, 또 나간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추호도 꺼낼 수가 없었다. 원래 생각은 집에서 한 학기 정도 입학허가서를 기다리며 쉬다가 바로 다른 도시로 갈 생각이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이미 프라이부르크 행 자체가 폭탄선언이었으니 정착하지 못 한 채 돌아온 것만으로 상황은 끝이 났다.

 

그래도 천우신조로 학습지 붐이 일던 때라, 일 년여의 아르바이트 끝에 꽤 넉넉한 자금을 마련해 다시 나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대학 입학허가서도 받고, 이번에는 비행기 표도 적당히 홍콩 정도(캐세이패시픽) 경유했다. 일부러가 아니라, 당시에 할인율 높은 표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건 당연지사다.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고, 머물 집을 찾는 일이 내게는 시급했다. 대학 내 기관을 통해 기숙사를 신청했으나 남은 방은 신축 뿐이라서 가격이 너무 비쌌다. 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마인프랑켄'이라는, 우리나라의 '벼룩시장'과 비슷한 지역생활정보신문을 통해 방을 찾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 신문을 확보하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을 통해 다 되는 세상이 아니었으니, 그때의 인터넷이란, 집이나 도서관에서 메일을 보내고 받는 정도의 것이었다.

 

 

침 일찍 일어나 마인프랑켄을 구한 후, 그곳에 실린 임대인들의 번호로 일일이 전화를 걸고 버스를 타고 이동해 집에 도착해 보면, 남자 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집(WG라는 이름의, 일종의 셰어하우스)이거나,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오래된 집,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은 집들 뿐이었다. 그중 한 군데서는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집주인(본인은 다른 데 살고 있음)이 "이만한 월세로 어디 가도 이런 집 못 얻는다."라는 말로 초행인 나를 기죽게 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마땅한 집을 찾지 못 한 채, 해질 무렵 어느 게스트하우스 옆을 지나게 되었다.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그날만큼은 유스호스텔이 아닌 편한 곳에서 자려고 들어갔는데 방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오려다가, 혹시 그럼 근처에 세를 들 만한 집이 있을까 물었더니 직원이 기다려보라고 하고선 어딘가에 전화를 해주었다. 그곳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첫 집을 얻게 되었다. '프라우 프리스'라는 친절한 할머니가 집주인이었던, 앞서 말한 그 "이만한 월세"보다 훨씬 더 저렴한 월세까지 덤으로 주어진 그 집은 내게 정말 행운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그려준 약도를 들고 도로로 내려오니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 두 분이 있었다. 위에 있는 사진에 그 창문이 보인다. 그때처럼 손을 흔들던 프라우 프리스와 그 따님이 금새 나타날 것만 같은..

 

 

그때 얻은 내 방이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는 없었던 물건들이 여기 와서는 많이 생겼다. 공부 마치고 귀국하는 이들에게서 이것저것 중고로 사다 보니 물건이 많아졌다. 왼쪽부터, 소형 램프, 자동응답 전화기도 있다. 책상 한 쪽에는 2구짜리 헤르트도 있어서 간단한 조리도 가능해졌다. 보이진 않지만, 침대 뒷편으로는 작은 소파도 있다. 침대, 책상, 냉장고와 함께 이 방에 딸린 물건이다.

 

이제 보니 커피 메이커도 있었나 보다(냉장고 위). 역시 사진은 역사이자 기록이다. 프라이부르크에 있던 때, 사진기가 없어서 대만 룸메 페이샹이 찍어준 사진 몇 장이 전부였던 게 아쉬워서 똑딱이 카메라도 중고로 마련했다. 그때 그 카메라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사진도 있을 수 없었다. 아래에 있는 마리엔베르크와 마인강 사진도 그 카메라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위의 사진은 1998년에 앞서 말한 그 중고 똑딱이로, 아래 사진은 2009년 디지털 카메라(파인픽스 F10)로 찍었다. 둘 다 알테마인교(Alte Mainbruecke) 위에서 찍어 구도가 비슷하다.

 

"마인강을 지날 때면 춤 추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그 표현처럼, 아름다운 마인강에 드리운 마리엔베르크 요새의 그림자는 늘 마음을 춤추게 한다. 도시가 강을 끼고 있다는 건, 그만큼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디 춤만 추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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