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또 하루

퀼트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

by 비르케 2019. 3. 12.
300x250

 

지역 카페에 중고로 올라온 퀼트 책을 얼떨결에 업어오고야 말았다. 집안 한쪽에 잠자고 있는 해묵은 원단들에 봄의 숨결을 불어넣고 싶은 열망이 나도 모르게 발동해 책을 올린 사람에게 챗을 걸었고, 몇 마디 나누다가 불쑥, '제가 살게요!' 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책들은 나의 것이 되었고, 나는 이제 스스로가 낸 숙제를 위해 가끔 바늘도 손에 쥐게 되었다.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바느질 또는 재봉 관련된 것들을 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학교에서 스티치를 하나씩 배우던 때, 또는 수틀을 앞에 두고 수놓기 숙제를 하던 때도 생각나고, 수년 전 옷을 만들겠다고 재봉틀을 끼고 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간 듯 느껴지기도 해서 기분이 오묘하다.

 

"보이세요?"

 

퀼트는 처음이라는 내게, 책을 판 분이 아플리케나 패치워크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생각코 알려주다가 갑자기 던진 질문이다. 그때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책 내용을 훑던 참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그분은 10년 넘게 하던 걸 눈 때문에 이제 접는 중이라 한다. 허물없이 나이까지 서로 공개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나보다 오히려 네 살이나 적다. 아직은 괜찮다고 했더니, 그런 내가 무척 놀랍다는 반응이다.

 

학창시절 내내 고도근시로 오랜 시간 안경을 꼈지만, 그만큼의 보상처럼, 내게 노안만큼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늦게 오는 듯하다 (근시면 원래 노안이 더 늦게 온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지금은 라식을 통해 안경이 주는 불편함도 벗어버린 상태인데, 라식때문엔지 또 야간 운전시 눈부심은 좀 있다.

 

책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세월 해오던 일을 서서히 접어야 하는 맘은 과연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접는다고 해서 아예 그 일을 못 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 뭔가를 접는 시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새로 시작하기도 하고 그 일이 주는 즐거움을 새로 알아가기도 한다.

 

이제야 퀼트를 시작해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더 늦었더라면 그나마 시작도 못 했을 뻔 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이 퀼트를 시작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이다.

 

퀼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도 아니고, 다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취미들을 좀더 다양하게 갖고 싶을 뿐인데, 재봉을 하던 시절부터 오랜 시간 잠만 자고 있던 나의 원단들은 과연 언제나 다 빛을 보게 될지... 퀼트 책들을 책장에 들이고 보니 그나마 마음만큼은 많이 든든해진다. 참 그득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