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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한 어느 시골의 나무

by 비르케 2019.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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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시 관련 작년 포스트 캡처


 

작년 5월 18일에 작성한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관련 포스트다. 어느 시골길을 지나다가 황량한 빈집 하나를 보았는데, 그때 모습이 마치 브레히트의 시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해서 포스팅했었다. 포스트 말미에, 기회가 되면 그 집과 나무를 찍은 사진을 올려보겠다고 했는데, 그때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기숙사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한 달에 한 번 오가면서, 고속도로가 밀릴 때 지나게 되는 우회도로에서 만나는 도로변 집이다. 지대가 낮아 집은 도로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나무는 거의 가로로 눕다시피 뻗어 있다. 차가 밀리는 때만 보게 되니 이렇게 사진을 찍을 여유도 있다.

 

일반 가옥은 아니고 방앗간처럼 보인다. '처럼'이란 표현을 쓴 것은, 시골의 방앗간은 어릴적 외가 근처에서 딱 한 번 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국도 지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사그라져가고 있는 집과 그 옆의 나무를 보며, 사람들로 북적였을 그 언젠가를 상상해 보면 그 또한 아쉬운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브레히트의 시에서는 토질이 나쁜 땅에서 자라는 구부러진 나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사진 속의 나무는 토질이라기보다 주변 환경 요인으로 이렇게 자란 것 같다. 오랫동안 뿌리와 줄기를 뻗고 자라던 땅이 차들이 달리는 도로가 되었으니, 자라는 내내 바람과 먼지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을까. 주인이 버리고 간 집을 향해 점점 더 구부러져 쓰러져가는 나무의 모습이 볼수록 안쓰럽다. 그래서 그때 포스트에도 막대기 몇 개 가져다가 받쳐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썼었다.

 

세월이 지나 또 어느 날엔가는 이 나무도, 집도 사라지고 없을지 모른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데리러 오갈 일도 없어질 테니 그때는 이 길도 나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내가 안 가는 날이 더 먼저이길 바라게 된다. 이 나무와 집이 먼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면, 가끔 오가던 그 길도 많이 낯설고 황량해질 것 같다. 차가 막혀도, '그 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을까', '나무는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하는 기대와 상상이 있어 막히는 운전길이 그나마 편안했던 것 같다. 

 

금요일에 집에 오고 일요일에 귀교하는 아들이라, 대부분 이 길은 일요일에 아들을 학교에 다시 데려다주고 혼자 되돌아오는 길에 만나게 된다. 일요일 고속도로가 밀리고 네비가 길을 돌리기 시작하면, 그래도 오는길 중간쯤에 이 나무와 집이 있어 한 편으로는 마음의 짐이 덜어지곤 했다. 그러니 평소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가 세 시간이 걸려도 조금쯤은 참고 올 만 했을 것이다.

 

내가 그 길을 지날 수 있는 시간과 그 집과 나무가 그곳을 지키고 서있을 시간이 서로 맞춰진다면 그 또한  연이라면 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브레히트

시골길에서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도시에서 같으면 그렇게 마구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 텐데, 나무는 가지를 뻗다가 뻗다가 아래로 아래로 굽어 땅을 향해 기고 있었다. 애처로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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