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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 산책..

충남 역사박물관, 작지만 뜻깊은 박물관

by 비르케 201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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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역사박물관은 거의 5년 만이다. 5년 전쯤 이곳에 들렀을 때는 '공주'라는 도시가 일제의 외압에 의해 쪼그라들기 전에 얼마나 대단한 도시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저 지방 소도시에 불과하다 여겼었는데, 생각과 달리 관직에서 물러난 양반들이 주로 터전을 마련하던 요지 중 한 곳이 공주였고, 그런 이유로 공주는 지방 도시 중에서도 깐깐한 실세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감영이 있던 곳인 만큼 큰 도시는 큰 도시였던 것이다. 충남 지역의 중심이 대전으로 옮아가면서 과거의 영광은 퇴색되었지만, 찬란하던 도시의 자취는 아직도 유산으로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국고개길

 

'국고개길'이라 이름 지어진 공주시 중동의 빨간 바닥 길을 따라가다 보면,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터가 보인다. 이곳이 충남 역사박물관의 주차장이 있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위쪽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크지는 않지만 나름 값진 소장품을 갖춘 이곳 박물관의 입구에 이른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이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이토록 작은 박물관에서 전에 이미 본 걸 또 본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전시품도 조금은 변화가 있었고, 그때 보지 못 했던 것들도 새로 보게 되었다.

 

 

석봉 한호 간찰

 

지난번 왔을 때는 보지 못 했던 것 같은데, 한석봉의 간찰이 있다. 한석봉이 강원도 흡곡 현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재할 방도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석봉 간찰에 관한 설명

 

한석봉의 간찰

 

한석봉 하면 역시 글씨다. 공부를 다 했노라 돌아온 석봉의 말에 석봉의 어머니는 등불부터 껐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석봉은 글씨를 써야만 했다. 불을 다시 켰을 때 어머니의 떡은 일정하게 썰려 있었지만, 한석봉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고사다. 공부를 마저 하고 오라고 돌려보내졌던 한석봉, 그가 그의 어머니와 어둠 속에서 벌인 뜻깊은 시합(?)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게 된다. 정말 한 치 흐트러짐이 느껴지지 않는 반듯한 글씨다.

 

 

성삼문 신주를 옮겼던 요여

 

성삼문의 신주를 옮겼던 요여(가마)

 

 

다음으로 내 눈길을 끌었던 물건은 성삼문의 신주를 옮기는 데 사용했던 '요여'였다. 성삼문은 잘 알다시피 사육신 중 한 사람이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정권을 찬탈한 세조를 향해 '전하'가 아닌, '나리'라는 호칭을 사용해 더욱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 결과 능지처참과 멸문지화를 당했던 인물이다.

 

단종 복위를 꽤했던 사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성삼문의 동생들과 아들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혈손이 끊겼지만, 관비로 끌려갔던 성삼문의 아내 박씨(무안 박씨)가 그의 외손에게 성삼문의 신주를 모시게 하면서 그의 신주가 보존되었다 한다. 그 후 임진왜란 통에 인왕산에 이를 묻었던 것이 1672년 발견되어 다시 외손들에게로 갔다고 한다.

 

 

아메미야 히로스케씨의 기증품

 

야메미야 히로스케씨의 기증품

 

' 야메미야 히로스케 ' 라는 일본인의 기증품도 눈길을 끌었다. 일제시대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자라다가, 광복과 더불어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간 후, 현재 일제시대 때 공주와 인연을 가진 일본인 모임 '공주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다. 총 68종 328점을 기증했다니 쉬운 결정을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함흥읍도와 관련된 유물

 

함흥읍도는 조선 후기 함경도의 감영이 있던 함흥 지방을 그린 그림식 지도를 지칭한다고 한다. 박물관 전시장 끝자락에 사진이 연거푸 걸려 있는데, 이게 뭘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 한 채, 그저 공주 인근의 옛 모습이겠거니 하면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내려왔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서야 뭔가 사연이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기모노를 입은 아이의 모습, 서양식 옷차림을 한 여성들, 성천강에서 얼음을 깨는 사람들, 만세교의 모습, 함흥장의 인파 등이 그 당시 함흥 지방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함흥읍도는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217호로 지정되어 현재 이곳 충남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함흥읍도에 있는 함흥성, 성천강과 만세교, 포도, 반룡산 등이 위에 있는 옛 사진과 함께 전시중인 것이다. 정작 함흥읍도는 사진으로 담아오지 못 했지만 다른 사진들이라도 보게 되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함흥읍도가 그랬듯이, 정작 꼭 새겨서 봐야 할 유물들 중에 간과하고 온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 충남 역사박물관을 찾더라도 할 일이 남아 있는 셈이다.

 

 

 

충남 역사박물관에서 내려다본 모습. 아래로 주차장이 보이고, 건너편에는 1897년에 건축된 중동 성당이 보인다. 이 일대가 중동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곳 성당의 이름도 중동 성당이다. 충남 역사박물관도 지대가 높아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는데, 중동 성당의 계단은 계단의 개수가 박물관의 서너 배는 더 많은 듯 하다.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 폭이 많이 좁아 보인다. 신록에 둘러싸여 있는 성당의 모습이 고즈넉하니 멋지다. 박물관을 두 번 오르는 동안 성당은 늘 눈으로만 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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