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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어느 여름 꽃에 관한 이야기 어릴적 학교 가던 길, 그 어린 눈에 살굿빛 화려한 꽃이 들어왔다. 으리으리한 부잣집의 담벼락에, 마치 벽을 타고 흘러내리듯 피어 있던 그 꽃은, 잠시 내린 비에 촉촉히 젖은 채 꽃잎 몇 장을 바닥에 떨군 채였다. 가만히 다가가 꽃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만 같은 꽃이었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길 모퉁이에서 다시 그 꽃을 보았다. 강렬하게 뇌리에 와 박혀있던 어린 시절 어느 날의 잔상을 떠올리며 여름 한 철 빙긋이 미소 지으며 그 곁을 지나 학교에 다니곤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러 드디어 그 꽃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능소화" 살굿빛의 소담한 꽃, 어린 나를 멈추게 했던, 대학생이던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그 꽃을 오늘 다시 우.. 2016. 8. 2.
카모메 식당-2 이 잔잔하게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었던 데는 여주인공 '코바야시 사토미'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마련하고 차를 따르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도 섬세하고 단아하다. 합기도 무도인 딸로 등장하는 내용답게, 무릎걸음이라 불리는 아침 운동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다. 눈빛이며 몸짓이며, 정말 무도인답다. 관련글: 카모메 식당-1 미도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퓨전 오니기리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사치에는 정통 일식을 고집하기 보다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나 쇼윈도 앞에서 관찰만 하던 할머니 3인방도 시나몬 케잌 향기에 이끌려, "어디 한번 맛 좀 볼까?"하며 가게에 들어온다. 점점 더 바빠지는 사치에.. 가게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2016. 8. 1.
카모메 식당-1 영화 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 개봉작이다. 요리 장면, 음식의 소리, 예쁜 그릇, 여주인공의 단아한 몸짓'이 서로 어우러져 감각적인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이다. 영화는 핀란드 헬싱키의 항구에서 갈매기들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카모메'가 갈매기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갈매기를 따라 카메라가 이동하는 동안 나래이션이 이어진다. '핀란드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거리는 것을 보면 초등학생 시절 기르던 '나나오'가 떠오른다. 나나오가 너무도 귀여워 엄마 몰래 밥을 많이 줬더니 점점 살이 쪄 죽고 말았다. 그 다음해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나나오때보다 덜 운 것 같다. 나는 살찐 동물들에게 약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보이기 때문이.. 2016. 7. 31.
입시를 목전에 둔 아이들을 보며.. 여동생과 나는 연년생이다. 서로 비슷하게 결혼을 했고,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일 년 정도의 터울을 두고 가지게 되었다. 우리 애들 서기와 유니, 조카, 셋 다 남자애들이다. 외동인 조카는 그 중 가운데로, 우리 큰애 서기와는 속 깊은 고민이나 진로 이야기 등 엄마들에게는 못 할 말들을 허물없이 터놓는 사이다. 조카와 우리 둘째 유니는 놀 때 서로 죽이 잘 맞는다. 노는 걸로 치면 빠지지 않는 두 녀석이라 만나면 따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어릴 때는 서로 삼총사니 어쩌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종 간이 아닌 친형제인 것처럼 지내던 사이니 지금도 친구들보다 더 각별해 보인다. 어느 날인가 연휴를 맞아 동생네가 집에 놀러왔다. 학원 숙제를 바리바리 한짐 싸와서 마음이 안 편했는지 조카가 공부방에 .. 2016. 7. 29.
이규보의 슬견설 이규보의 에 나오는 '슬견설(蝨犬說)'이다. 학창시절 이 글을 읽고 작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옛 글에서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이렇게 까지 자세하게 이야기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사람이나 큰 짐승들만 죽음을 두려워 한다 여겼을 뿐, 미물이라 불리는 작은 생물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때였다. 그러나 학창시절 이 글에 감동하던 것과 별개로, 그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모기를 잡고, 파리를 내쫓고, 더러는 먼지다듬이도 휴지로 쓱 해치운다. 거기엔 항상 '해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나름의 구실이 붙는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들이 이렇게 작은 곤충이나 벌레같은 미물에만 가학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를 사살할 때도 가책같은.. 201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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