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방랑자여, 슈파...로 오려는가'는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어느 소년병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불과 3개월 전에 글씨체 연습을 하며 따분해하던 학교 미술실에, 소년은 부상병이 되어 돌아왔다.
방랑자여 슈파..로 오려는가 - 하인리히 뵐
하인리히 뵐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전후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초기작 '방랑자여, 슈파..로 오려는가'는 1950년 중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범우사에서 구성을 달리 해 번역본으로 다시 묶은 책이다. 겉표지에도 이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의 이름이 도서명으로 찍혀 있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란 제명은 테오도르 하에커의 <밤과 낮의 수기>에서 따온 인용이다.
세계적인 참극이 우연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알리바이를 구하려는 사람에게도 그러했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나는 세계대전에 참가했었습니다.
이 책에는 하인리히 뵐의 중단편중 열여섯 작품이 실려 있다. 오래전에 읽었어도 '방랑자여 슈파..로 오려는가(원제: Wanderer, kommst du nach Spa...)'는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방랑자여 슈파..로 오려는가'라는 제목은, 주인공이 흑판에 글씨를 쓰다가 자리가 부족해 끝부분을 마저 쓰지 못해 만들어진 미완의 단어 'Spa'를 포함하고 있다. 문법상 우리말과 서술어 자리가 달라서 이런 이상한 제목이 됐다. '스파'가 아닌, '슈파'가 된 이유도 독일어 발음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1914년부터 1918년까지) 패전국으로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감당해야 했고, 대내적으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그런 혼돈 속에 강력한 지도자 한 명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의 허상 아래 초강력 나치즘을 표방하며 국민들에게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했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일본판 파시즘인 군국주의가 결합해 이 세 나라는 스스로를 추축국이라 칭하며 연합국과 2차 대전(1939~1945)을 치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일은 전쟁에 총력을 쏟아 대응했고, '히틀러 유겐트'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부터 조국을 위해 총을 드는 데 망설임이 없도록 아이들을 조련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학업을 관두고 전쟁에 참전한 소년병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9년 학제인 김나지움(독일 중등과정 학제 중 하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중고교 과정)인데, 8년을 다녔다는 대목이 보인다.
줄거리
2차 대전 중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김나지움 앞에 트럭이 도착하고 부상자들이 내려진다. 죽은 자들을 두고 나머지는 미술실로 옮기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고, 전쟁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어수선함 속에 어린 부상병은 들것에 실린 채 미술실로 향한다.
그는 누운 상태로 복도와 계단을 지나면서 그 공간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군데군데 조금씩 개조됐지만, 그곳은 자신이 불과 석 달 전에 떠나온 학교라는 사실을 차츰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혼미한 정신을 믿을 수 없고, 전장에서 고향까지가 얼마나 먼데 그럴리 없다, 당시 학교들이 획일적으로 비슷한 구조라서 아마도 아닐거야,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미술실에 이르러 그는 그곳이 자신의 학교가 확실하다는 증거를 찾게 된다.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그가 흑판 뒤로 옮겨졌을 때, 그 흑판에는 석 달 전 자신이 쓰다 만 글씨가 있었다. 'Wanderer, kommst du nach Spa...', 흑판에 글씨체 연습을 하던 중이었는데 글씨를 너무 크게 시작한 바람에 Spa까지만 쓰고 나머지 철자들은 미처 쓰지 못했던 기억, 그날 선생님은 그의 글씨에 대해 화를 냈었다.
원래는 'Sparta(슈파르타=스파르타)'를 쓰려던 것이었다. 그 문장은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Leonidas)와 관련된 인용문으로, "방랑자여, 스파르타에 오거든 법이 명하는 대로 우리가 거기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고 알리라."에서 비롯됐다. 레오니다스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된 인물이다. 그렇듯 용감하게 목숨 바쳐 열심히 싸울 것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글씨체 연습을 함에 있어서도 영웅 이데올로기를 표본 삼았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계속 누워만 있던 그가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팔이 없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도 없었다. 움직일 수 없던 이유가 그저 침상에 묶여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던 그는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의사가 주사를 놓는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꽉 붙잡는 손길, 소방관 제복을 입고 있는 낯익은 그는 학교 관리로 일하던 비르겔러였다. 간혹 우유를 마시러 들르곤 했던, 작고 침침한 방의 비르겔러가 그의 옆에 있었다. 역으로 비르겔러의 시선으로는 이렇게나 엉망이 되어 있는 화자를 알아차릴 리 없다.
어린 부상병이 비르겔러에게 "우유"라고 힘없는 한 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처참한 모습으로 학교에 도착했을 때부터 줄곧 목이 몹시 말라 있던 그였기에 관리인을 알아본 순간 석 달 전 그 평범한 날의 우유가 간절했을 것이다.
이 책은 1988년 초판이 출간되었고, 당시 가격은 3,500원이었다. 책 중간에 오자도 좀 있는데, 아마도 쇄를 거듭하면서는 이것저것 시정이 됐을 것 같다.
하인리히 뵐은 혼란한 사회와 그 속의 군상들을 일일이 관찰하듯 그리면서도 결코 난해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한다. 이 작품도 어린 부상병의 시선으로 학교와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내레이션처럼 물 흐르듯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미술실에서 꽃병을 그리거나 글씨체 연습을 하면서 지루해 어쩔 줄 몰라하던 어린 병사가 죽음과 공포의 한복판에서 체념하는 모습이 전쟁의 상흔만큼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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