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정리하다가 기억에도 없는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다.
정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나머지 유독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기억 위에 기억이 다시 새롭게 각인이 된다.
그러니 기억이라는 것도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좋은 이유 (ft. 엄마의 사진)
한 장의 사진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기억 속 그날의 날씨도, 함께 간 사람도, 그날의 색채와 냄새까지도 느껴진다.
시간이 가면 사진만 남는다는 말은 진짜다.
최근에 엄마의 앨범과 해묵은 봉투속에 있던 사진들을 일일이 촬영해 파일로 만들어드렸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사진들을 파일로 받아본 엄마는 화면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셨다.
언제 그곳에 갔는지 기억마저 아슴한 오래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새삼 놀라기도 하셨다.
이 사진 한장은 엄마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기억을 애써 소환할 매체가 됐다.
그런데 언제 어떤 이유로 이곳에 가셨는지 기억이 안 나시는 듯했다.
'언제 이런 곳에 갔었을까' 하며 혼잣말만 연신 하셨다.
소환하기에 너무나 먼 기억은 말끔히 지워지기도 한다.
함께 간 어르신들도 이제는 거의 고인이 되셨으니 알 수 없고, 사진 속 아이들은 세상모르는 철부지다.
한창 멋쟁이셨던 엄마는 흰색 원피스에 샌들 차림이다.
엄마는 칠순을 넘기셨어도 아직도 멋쟁이시다.
사람의 본성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와, 사진은 엄마에게 정보 하나를 알려준다.
'피안교(彼岸橋)'
다리 이름을 통해 이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존재했다.
검색을 통해, 해남 대흥사 피안교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엄마, 해남 대흥사 간 적 있어?"
그렇다고 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기억 속 퍼즐 한 조각이 맞춰졌다.
엄마는 전라도 분이시라, "오매, 오매"를 연발하면서 그때를 떠올리셨다.
드디어 사진 한 장을 통해 엄마의 오랜 기억 하나를 소환해 드렸다.
사진을 일일이 찍어 다듬는 데만 꼬박 이틀을 매달렸는데 나름 기분이 좋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내가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하셨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 빚을 갚느라 애쓰는 중인지도 모른다. ㅎㅎ
사진 속 다리 이름처럼, 피안에 드는 그날까지 착한 일 해도 모자랄지도.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일 자체가 어쩌면 서로에게 빚을 갚는 일일지도.
김광림 시인의 '갈등'이라는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 빚 갚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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