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멘시타(눈물 속에 피는 꽃: L'immensità)', '서글픈 사랑(Nessuno di Voi), '라 노비아(La Novia) 등의 곡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던 칸초네 가수 밀바가 지난 4월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추억의 칸초네 - 밀바, 칭케티, 이바 자니키, 니콜라 디 바리
라디오를 즐겨 듣던 세대들에게는 칸초네라는 음악 장르가 낯설지만은 않다.
예전의 라디오는 제3세계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다.
대학에 다니던 나는, 못 먹고 못 입을 망정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피 같은 돈으로
책과 음반, 그리고 질 좋은 녹차는 자주 샀다.
녹차는 없지만, 책이나 음반들은 어렵게 마련한 만큼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듣는 것만으로 부족했던지, 그 당시 세광음악출판사에서 나온 칸초네 앨범이라는 책도 샀었다.
이 책도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버릴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밀바가 떠났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책을 안 상하게 고이 다루는데도, 세월이 만들어놓은 자국들은 어쩔 수가 없다.
수요자가 적어 감히 제작을 기피하는 유럽의 대중음악까지 발행하고 있습니다.
세광 음악출판사에서는 칸초네 앨범 말고도 샹송 앨범과 라틴 앨범까지 발행했었던가 보다.
인쇄일이나 발행일 모두 1986년이라 되어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산 것은 그보다는 훨씬 뒤다.
즉, 그 당시로서도 사람들이 안 찾아, 오래 진열만 되어 있던 책을 내가 구매한 것이다.
책 표지 중간에 밀바의 사진도 보인다.
광고에 나오는 영상 같은데, 배경음악으로 니콜라 디 바리의 '징가라(Zingara)'가 깔려 있다.
지금은 낯선 음악일 수 있지만, 그때 당시 칸초네의 느낌도 이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이국적인 느낌이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그런 음악이었다.
징가라는 원래 니콜라 디 바리의 곡이 아니라, 이바 자니키의 산레모 가요제 우승곡이다.
이바 자니키의 목소리로 들어도 좋다.
'징가라'는 집시 여인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그즈음 나는 칸초네 가수 중에 질리오라 칭케티를 가장 좋아했었다.
칭케티의 이 곡, Dio, Come Ti Amo(디오 코메 티 아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이다.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밀바의 노래는 칸초네로 시작해, 나중에는 독일어로 된 곡들을 주로 들었다.
그리스 작곡가인 반젤리스와 함께 1981년 내놓은 독일어 음반,
Ich hab' keine Angst(두렵지 않아요)는 LP판으로도 소장하고 있다.
독일어 버전이라 그전에 부르던 칸초네와는 색깔이 많이 다르다.
앨범 자켓의 느낌 때문인지, 좀 더 강하고 철학적이며, 감정을 절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들이 많다.
이 앨범자켓을 보니 그 안에 있는 몇 곡이 금세 떠오른다.
"Ich hab' keine Angst (두렵지 않아요)"
"Ich bin so gern allein(혼자 있는 것도 좋아요)"
"Sie sind noch jung(그들은 아직 젊어요)"
"Da oben ist sein Zimmer(저 위 그의 방)"
"Er(그 남자)"
"Christine(크리스티네)"
반젤리스와 함께 한 앨범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곡은,
Sie sind noch jung(지 진트 노흐 융 : 그들은 아직 젊어요) 일 것 같다.
이곡을 포스팅해볼까도 생각했는데, 뭔가 배경이 있어야만 설명되는 곡이다.
느낌만 표현해보자면, 젊은 연인 두 명이 서로 쓰담쓰담하는 걸, 나이가 좀 있는 3자가 바라보고 있다.
그 3자에게, '(저 젊은이들) 참 좋을 때죠' 라는 식의 말을 건네는 그런 노래다.
Ich hab' keine Angst(두렵지 않아요)라고 노래하던 밀바가 떠났다니,
내가 아직 "노흐 융(noch jung)"이었을 때 듣던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슬프게 들린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빠진 반젤리스의 연주는 그보다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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