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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사랑6

말로써 강한 힘을 가지는 청유형 화법 "지연아, 앞에 잘 보고 가자." 어린 손주를 데리고 가는 어느 할머니의 한 마디다. 스치면서 듣는 이 한 마디가 놀라웠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연아, 앞에 똑바로 보고 가." 거기에다 한 마디 더 거들기까지 한다. "똑바로 안 보면 넘어져." 손주를 청유형 화법으로 대한다는 것,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상대가 설령 어린아이 일지라도 청유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함께 깃들어 있다. 할머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배려한 청유형의 대화는 상대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굳이 앞.. 2021. 5. 2.
쿠겔호프, 무, 그리고 바람의 집 애들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먹던 쿠겔호프. 지난 크리스마스에 제과점에 갔다가 구매해봤다. 그런데 한 입씩 잘라서 먹고 나서 그대로다. 추억 때문에 이 정도라도 입에 넣은 듯하다. 추억 한 입. 예전 서양에서는 긴긴 겨울밤을 보내기 위해 이런 달달한 것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겨울밤에 엄마가 고구마나 무를 깎아주시곤 했다. 생 고구마도 맛있지만, 무도 단맛이 강한 건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연둣빛 무청을 깎아 어린 자식들 손에 들려주고, 엄마는 흰 부분을 잘라 드셨다. "다각다각, 아삭아삭..." 그렇게 맛있게 넘어가던 무를 요새는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먹어본들 예전의 그 맛과 같을까마는. 먹다 둔 쿠겔호프를 한 번 먹을 분량씩 잘랐다. 그대로 두면 분명히 자르기 싫어 안 먹을 게.. 2021. 1. 6.
카드 내역으로 아들의 작은 일상을 보며.. 울 아이들, 서기와 유노는 둘 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생인 서기도 고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이라 일찌감치 집을 떠나 있고, 고등학생 작은애 유노도 기숙사에 있다. 아이들을 품 안에서 일찍 떼어놓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모진 엄마인지 가끔은 새롭게 시작되는 내 삶이 반갑기까지 하다. 물론 아이들이 그립다. 오랜만에 한 번씩 다녀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처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집이 그립지는 않았는지 종일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이들도 집에 와서 쉬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애들에게는 '집'이라는 곳과 엄마라는 사람이 맑은 공기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맑은 공기처럼 그 속에 녹아들어 그냥 편히 있고 싶은 것... 영어 홈(Home)과 맘(.. 2019. 5. 25.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 시골에서 감자가 올라왔다. 감자알들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탕 속으로 들어가 노곤노곤한 몸을 푹 담갔다. 그동안 땅속에서 고단했던 삶이 고이 삶아졌는지 어쩐지 젓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아프다고 안 하는 걸 보니 삶아 졌다. 보기만 해도 예쁜 감자들이다. 올해 감자는 흔히들 '금자'라고 한다.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는 감자인데, 올해는 유독 작황이 안 좋다. 시골 어머님이 혼자몸으로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라, 도착하자마자 삶아 껍질을 까서 소금에 찍어 입 속에 넣었다. 포슬포슬 부서지는 식감에 뜨거운 열기를 호~호~ 내보내며 그 자리에서 세 알의 감자를 맛있게 까먹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안 받으신다. 또 밭에 가 계신가 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두 분이서.. 2018. 6. 5.
중고책 속 아버지의 사랑 책장에 빡빡하게 꽂혀 있던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년 째다. 아이들이 크면서 안 보게 된 책들과 한 번 읽고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을 추려 한 번씩 알라딘 중고매장에 판다. 책은 그래도 신간을 주로 사는 편이지만, 때로는 알라딘 중고매장을 통해 중고책을 구입할 때도 있다. 우리 가족은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이라, 세월만 묵었을 뿐 얼룩이나 접힘이 거의 없는데, 중고로 책을 구입하다 보면 심한 경우도 종종 있다. 줄이 그어져 있기도 하고, 낙서나 얼룩이 있기도 하다. 분명히 상태체크에 '하'가 아니었는데도, 심지어 '상'이라 표기되어 있던 책들도 막상 받아보면 상태가 영 아닐 때가 있다. 개인대 개인간의 거래다 보니 상태 표시라는 건 이미 큰 의미가 없다. 이의 제기를 하고 반품을 할 수도 있.. 201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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