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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2

시간이라는 것, 시간에 초연하다는 것 냉장고 야채칸을 열어 사과 하나를 꺼내 먹으려다 놀랬다. 새 사과를 넣어둔 곳 안쪽으로 오래된 사과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처음 나오는, 달콤한 향이 나던 아오리 풋사과가 푸른색 그대로 말라 있었다. 새 사과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몹시도 쭈글거리는 모양새다. 이걸 보고 있자니, 어느 그림책에서 본 채소들이 연상됐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라는 '안체 담'의 그림책, 어린이들의 눈으로 시간을 해석해 놓은 책이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또렷한 색을 지닌 단단한 채소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다. 멀겋고 탄력이 사라진 모습으로. 시간이라는 것은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금(time is gold)' 이라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은 '쏜살(=쏜 화살) 같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2021. 2. 15.
세이쇼나곤과 향로봉 를 쓴 일본 헤이안 시대 뇨보(궁녀) 세이쇼나곤과 그녀가 모시던 중궁 데이시의 문답에 이런 구절이 있다. 중궁께서 "쇼나곤, 향로봉의 눈은 어떠하냐?"하고 말씀하시기에, 말없이 문으로 가서 발을 말아 올렸고, 이에 중궁도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모두가 (그 시를) 알고 있고 와카로 읊으면서도 미처 생각도 못 했다. 역시 중궁을 모시기에 알맞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세이쇼나곤이 자신이 모시던 중궁의 질문에, 대답 대신, 문에 걸린 발(주렴)을 걷어 올린 것은,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백낙천)의 한시에서 '향로봉의 눈을 주렴 걷고 바라보네'라는 구절을 떠올렸음이다. 말 대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녀의 모습에, 이를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졌을 중궁 데이시도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밖..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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