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뷔르츠부르크6

친구가 몰래 찍어준 귀한 순간 20년도 더 된 오래된 사진들 중에 친구가 나 몰래 찍어준 사진이 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때였는데, 그때 나는 어느 베지테리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 간이식당이었는데, 뷔페에서 흔히 보는 커다랗고 네모난 스테인리스 트레이에서 손님들의 주문대로 음식을 덜어서 담아주는 게 그때 내가 하던 일이었다. 먹고 갈지 테이크아웃할지, 원하는 소스, 원하는 부위 등을 묻고 난 다음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음식을 덜어주었다. 날마다 메뉴가 바뀌었기 때문에 재료가 뭔지 알아야 해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랑 이야기 할 일도 많았다. 덕분에 웬만한 서양 식단과 소스 종류는 꽤 알고 있다. 때로 까칠하게, '베지테리안 식당에 계란 프라이가 웬 말이냐'고 쓴소리를 하던 손님도 있었고, 또 .. 2021. 4. 9.
독일인도 사랑하는 도시, 뷔르츠부르크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인들도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다. 바이에른 주에 속해 있지만, 적당히 바이리쉬(바이에른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완고함)하고, 체코 프라하를 닮아 있는 동화 같은 도시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뷔르츠부르크를 떠난 건 벌써 오래 전이지만, 파일 속 뷔르츠부르크 사진들을 꺼내 포스팅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 결국 오늘에야 하게 되었지만, 사진은 많고 다 올릴 수는 없으니 그중에 몇 개만 가려보았다. 따뜻하고 온화한 여름 날씨 속 독일 여행은 여행자들에게 더 큰 만족을 준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발길이 언제고 끊이지 않는 도시긴 하지만, 여름을 빼고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독일 날씨라 여행자들에게는 여름 휴가 기간 동안의 여행이 최고다. 많이 덥지도 않고.. 2018. 9. 17.
10년쯤 전 독일에 있을 때, 동네에서 인사 정도 하며 지내던 필리핀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먼저 자신의 집에서 차 한 잔 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니 현관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열네 살짜리 아들과 이목구비가 또렷한 그녀의 딸내미만 봐서는 그녀가 그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만 똑 떨어져 있으면 그 가족은 여느 독일 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독일 남자와 국제 결혼한 여자였던 것이다. 독일인과 결혼한 그녀는 몇 년이 지나 필리핀에 두고 온 동생을 독일로 불렀고, 동생도 오래지 않아 독일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동생은 언니와 같은 도시에 살면서 자주 오갔는데, 그러다 보니 나.. 2018. 8. 26.
페이샹, 이벤, 그리고 렌 그녀의 이름은 '伊文'이었다. 독일에 두 번째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완 출신 그녀를 알게 되었다.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살다가 내가 있던 도시로 공부를 하러 온 음대생이었다. 그녀와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당시의 나는 '페이샹'이라는 예전 친구를 많이 그리워했기에, 같은 동양인 여자애들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곤 했었다. '伊文'이란 자신의 이름을 두고, '네 이름을 한국에선 '이문'으로 발음한다'고 했더니, '이문'이든 '이벤'이든 발음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편하게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자기는 '패트릭'이 아니라, '빠뜨릭'이라 강조하던 어떤 애가 마침 떠올라, '이게 동양식 관대함이야.' 하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동양인들끼리는 일종의 '이심전심'.. 2018. 8. 25.
두 번째 독일 입성기 나의 세 번 독일행 중에 두 번째 독일에 갔을 때의 일을 기억해보려 한다. 포스팅 전에, 나의 기억이란 건 사진으로 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정도의 개인사적인 것이라서 특별히 볼 게 없음을 전제한다. 특히 이 이야기들은 이미 20년이나 묵은, 털면 먼지라도 일 것 같은 케케묵은 것들이라, 정보를 바란다면 더 더욱 그냥 패스해도 좋다. 이 포스팅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블로그도 일기의 일환이라..) 유학이었는지, 어학연수였는지, 어쨌거나 유학이라 우기며 출발했던 이십대 중반 프라이부르크 행에서 오래지 않아 귀국해버린 후, 또 나간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추호도 꺼낼 수가 없었다. 원래 생각은 집에서 한 학기 정도 입학허가서를 기다리며 쉬다가 바로 다른 도시로 갈 생각이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이.. 2018. 8. 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