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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바다같이 베푸는 사랑

by 비르케 201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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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평범한 촌에서 태어나 더 깊은 촌으로 시집갔다. 

농사만 지으면 되던 친정과 달리, 그녀가 시집을 간 곳은 어촌이라서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하고, 뻘밭을 누비며 꼬막, 바지락 같은 해산물도 부지런히 거둬야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살아가면서 배움을 얻을 기회도 그다지 없었고, 누군가의 깊은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다. 자식을 여럿 두었지만, 기르면서 곁에 끼고 사랑을 나눠줄 시간조차도 그녀에게는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냥그냥 자라났고, 그래도 누구 하나 비뚤어지지 않았으니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유독 까맣던 그녀의 눈동자는 나이를 듦과 동시에 점차 또렷함을 잃어갔다. 허리는 굽을 대로 굽고, 아파도 아픈대로 끌고다니던 두 다리는 양쪽으로 꺽쇠모양으로 벌어진 채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남았다. 


다 내어준 몸과 마음에도, 그래도 내어줄 것을 찾는 그녀는, 너무도 착해서 미워하려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다. 


한때 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라 시골장을 오가다보면 반갑게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분들의 기억 속에도 역시나 어머니는 '거절하지 못 하셨던 분',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뭐라도 하나 더 넣어주시던 분'이었다 한다. 


"아짐, 어떻게 지내? 어째 이리 몰라졌어(말랐어)?


하며 어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던 어느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며느리로서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 더운 여름 홀로 고택을 지키며 지내신다. 시골이라도 이웃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도 많건만, 어머니가 사는 곳은 주변분들이 모두 도회로 떠났다. 어디를 둘러봐도 빈 집만 남아 황량하기 짝이 없다.

 

지난번 회진 바다 에 다니러 갈 때 일부러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시댁에서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니, 집에 계시는 것보다 시원하게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였는데, 어머니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 하셨다. 


오랜 세월 바다를 벗 삼아 사셨을 텐데도 바다를 보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집이 너무 더워서 기어이 바람이라도 쐬자며 어머니를 차에 태워드렸다. 


바다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방파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바라보셨다.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지만, 너무도 깊은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계시니 차마 여쭤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무엇이든 내어주는 바다를 닮았다. 


자식이 주는 돈은 던지다시피 기어이 받지 않으시면서, 손자들 용돈을 주시려고 호주머니에 든 꼬깃한 돈을 꺼내 세고 계시니, 놔두시라고 얼른 어머니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나 앙상함만 남은 팔목의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손을 거두고 말았다. 무언가 안쓰러운 기분과 함께, 어머니의 큰 사랑을 거절하지 못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감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어머니를 보면 엉뚱하게도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만찐두빵'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손자같이 어린 학생들의 먹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자기만의 셈법으로 사랑을 나눠준 할머니의 모습과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아 있다. 


길에서 반가워 하던 아주머니가 연신 이야기 하시던,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뭐라도 더 주셨어!" 하던 말도 나의 이 느낌과 같은 것일 거라 생각된다. 


바다와 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금의 내가 감히 헤아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이를 더 먹고,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나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 만두랑 찐빵을 먹으면 두개의 빵을 더 준다는 만찐두빵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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