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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땅에 발 딛고 살고 싶은 희망에 대해서

by 비르케 2016.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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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류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사겠다고 벼르던 엄마가 올해 봄 기어이 주택의 안주인이 되었다. 처음엔 전원주택을 희망하셨지만, 도시 근교의 전원주택이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실감하셨다 한다. 그래서 엄마는 시끌벅적한 구도심의, 화단 하나 없고 그저 시멘트 발라진 작은 마당만 있는 2층짜리 주택을 사서 이사를 했다.

 

전원주택도 아니고, 갑자기 먼지 가득한 도심의 이층집을 얻었다니 사뭇 걱정이 되었다. 어린 시절 그런 집에서 살아보았기에 지금 우리가 아파트에 살며 누리는 이 편리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살았으면서도 엄마는 그때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셨나 보다. 아마도 나이 탓일 수도 있고, 때로 사춘기 소녀같은 로망을 꿈꾸시는 분이시라 또 그러실 수도 있다.

 

★부여의 유명한 막국수집이다. 옛집을 식당으로 쓰고 있다. 연꽃철 주말에는 줄을 서기도 한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궁남지 연꽃도 말라가고 있던 때였고 더우기 평일 오전이라 마치 시골 누구네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전원주택을 꿈꾸는 현대인들이 원하는 건 어쩜 그런 마음의 안식 아닐까.

 

이사를 하고 나서 엄마는 (엄마 표현대로)전기세가 벼락을 치고, 불을 넣어도 방이 별로 따뜻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쓰레기 문제, 주차 문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영업사원들, 교인들... 심지어 은행에서 몇천 빌리는 일마저도 뜻대로 안 돼 헉 소리나는 대출이자를 쓰고 있기도 하다. 앞서 내가 주택 구매를 만류했던 이유들이 다 이런 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두고 탓을 할 수는 없으니 나도 집을 보며 좋다고만 말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그럭저럭 집에 정을 붙여보려 노력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최근 날이 더워지자 서서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신다. 우선 문을 열 수가 없다 한다. 하필 길 옆이라 문을 열어두면 소음과 분진 문제가 심하다. 설령 이를 감수하고 문을 열더라도 빙 둘러 벽이 쳐져 있기에 바람이 잘 통할 리 만무하다. 그뿐 아니라 주변이 상가 건물이라 그 건물에서 엄마의 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조다. 문이라고 생긴 건 모두가 열었을 때 상가에서 적나라하게 내려다보인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불편하실만도 하다. 그래서 또 이사를 해야만 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동네의 묵은 집을 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엄마도 모르시진 않을 거다. 마음이 무거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 집 정리하고 차라리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사시라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엄마는 대뜸 무슨 소리냐며 또 "주택이 좋다" 한다. 덧붙여 너도 주택에서 살라고 조언하신다. 할 말이 없다.   

 

엄마처럼 나이 드신 분들이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어릴 적 고향을 꿈꾸는 건지, 무슨 이유로 주택이 최고라는 말씀하시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엄마가 꿈꾸는 "엄마의 주택"은 이른바 전원주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엄마는 전원주택을 얻고 싶어 발품을 많이 파셨으니...

 

어디 엄마 뿐이겠는가, 요새 전원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전원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환상 따위는 버려야 한다. 전원으로 돌아가 잘 정착해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 중 많은 수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 위해 발버둥친다고 하니까 말이다. 하루라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풀이 우거지고, 벌레가 들끓고, 기껏 씨 뿌려 가꾸던 것들이 말라 죽어버리는 것이 전원 생활의 이면이다. 몸이 안 좋다고 해서 하던 일을 며칠 안 하는 호사도 바랄 수 없다. 그러니 집을 '단 하루라도 내버려 두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때 전원 생활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이제껏 그렇게 살아오던 사람이 아닌 이상, 엄마처럼 칠순이 되어가는 도시 노인이 꿈꿀 곳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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