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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마음을 담아..9

어제는 새 잡느라, 오늘은 커피콩 주워담느라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 봉지를 잡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커피콩이 주방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냥 떨어뜨렸으면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잡으려다 텐션이 가중되어 이 난리가 났다. 어제 산책길에 우리집 앵무새가 날아가버려서 새 잡느라 진을 뺐는데, 오늘은 커피콩이다. 어제는 새 잡느라, 오늘은 커피콩 주워담느라 이걸 언제 주워담나.. 다시 먹을 거라서 빗자루를 들 수도 없고, 구석구석 일일이 집어 커피통에 담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세며 주우면 시간이 금세 갈까. 그러다가 노르웨이의 스릴러 영화 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는 어린 소년이 등장한다. 그의 생부는 그의 존재를 숨기며 어쩌다 한 번씩 먹을 것을 들고 집을 찾는다. 모자가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베풀어지는 그 호의 뒤에는 어머니를 향.. 2023. 12. 9.
옥수수와 노지 오이, 여름을 붙들고 있기 일주일 전쯤 길에서 노지 오이를 샀다. 마지막 노지 오이였다. 추워진 날씨 때문에 이제 좀처럼 나오지 않는 귀한 오이다. 그리고 그쯤 시장에서 찰옥수수도 샀다. 옥수수 또한 이제 귀한데 운이 좋았다. 지나간 여름의 맛을 붙든다. 여름이 남기고 간 향기가 진하다. 옥수수와 노지 오이, 여름을 붙들고 있기 마지막 노지 오이라고 이렇게나 많이 사버렸다. 못난이도 많지만 이게 진짜 맛이 좋다. 아삭아삭 씹히면서 강한 오이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여름의 향기다. 그 강렬한 여름을 붙들고 싶어 이렇게나 많이 사버렸나 보다. 되는대로 뚜벅뚜벅 썰어야 맛있다. 여기에 양념을 하면 향이 죽는다. 된장이나 쌈장에 찍어먹거나, 그냥 먹는 게 좋다. 달고 아삭하고 향긋하다. 여름이 따로 없다. 냉동실에 모셔둔 옥수수도 쪘.. 2023. 10. 30.
미소 같은 빛깔을 머금은 고운 마른고추 그녀는 유독 수줍음이 많은 아낙이다. 시장 한편에서 야채를 파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전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다 변죽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 미소 같은 빛깔을 머금은 고운 마른고추 "제가 손이 이래서요, 대신 담아주시겠어요?" 다른 채소를 손질하던 중이었는지, 그녀의 손에 거무튀튀하고 진득해 보이는 뭔가가 잔뜩 묻어 있다.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웃는 그녀를 대신해 딸기대야에 담긴 상추를 봉지에 담는다. 곧이어 그녀의 손이, 옆에 있던 상추보따리에서 상추 한 줌을 쥐고 나오더니 이쪽으로 내민다. 딸기대야에 있던 것만큼의 상추가 덤으로 담겼다. 손님에게 담으라고 한 게 미안해서 더 준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덤에, 상추를 좋아하는 이는 너무도 감사했다. 며칠 뒤 시장에서 그녀의 노점을 다시 .. 2023. 9. 8.
훈훈함을 경험한 당근마켓 중고물품 거래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당근마켓을 자주 활용한다. 초면의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매너도 나쁘지 않고 그다지 피곤하게 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반값택배 되느냐는 주문 정도의 피곤함인데, 그쯤이야 언제든 오케이다. 버리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가 잘 써주는 게 낫기 때문이다. 훈훈함을 경험한 느껴지는 당근마켓 중고물품 거래 최근에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 마음이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다. 한참 전에 모자를 올려두었는데, 막상 산다는 사람이 나타났건만 모자가 보이지 않는 거다. 사실대로 털어놓았더니, 언제든지 찾게 되면 챗을 걸어달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자를 찾게 되었고, 챗을 걸었다. 그쪽에서 모자를 반값택배로 받을 수 있을지 물었다. 반값택배비야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는 가.. 2023. 8. 24.
한 사람 때문에 지구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양하기에 각각의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뭔가가 있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들을 만나게 되면 꼭 뭔가를 사게 된다. 그분들의 물건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꾹꾹 눌러 담아줄 것만 같아서다.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어느 번화한 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한 할머니가 야채를 팔고 있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그분의 좌판도 단출하다. 딸기대야에 담긴 상추가 2천 원이란다. 그 외 무말랭이와, 또 뭔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암튼 다른 분들 것보다는 양이 적다. 집 근처 슈퍼에서 세일하면 천 원어치도 그 정도는 되는데... 그냥 산다. 지나던 사람이 들여다보며 그게 얼마냐 묻는다. 2천 원이라 하자 그냥 간다. 그때부터다...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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