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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말로써 강한 힘을 가지는 청유형 화법

by 비르케 2021.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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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아, 앞에 잘 보고 가자."

어린 손주를 데리고 가는 어느 할머니의 한 마디다.

 

스치면서 듣는 이 한 마디가 놀라웠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연아, 앞에 똑바로 보고 가."

거기에다 한 마디 더 거들기까지 한다. 

 

"똑바로 안 보면 넘어져."

 

 

손주를 청유형 화법으로 대한다는 것,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상대가 설령 어린아이 일지라도 청유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함께 깃들어 있다. 할머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배려한 청유형의 대화는 상대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굳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넘어질 확률 0.1%에 집중하기보다, 보호자인 할머니도 앞을 잘 보고 걷는데 자신도 할머니처럼 앞을 잘 보며 걸어야 될 것 같은 마음가짐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청유형의 화법은 상대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할머니의 청유형 제안을 받는다면 그 말을 들어야 할지 내 맘대로 할 것인지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설령 넘어진다 한들 울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눈물이 터져 나오더라도 그 눈물은 타인을 원망하는 눈물일 수 없다. 자신을 배려하는 청유형 제안을 무시했을 때 나오는 결과이므로 어쩌면 그로 인해 더 진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넘어질 확률 0.1%를 소리 높여 이야기할 때, 아이들은 그때 넘어지기 쉽다. 0.1%의 확률을 더욱 끌어올려 10% 확률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모자라, "내가 뭐랬어, 넘어진다고 했지?"라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가 양육자에 대해 느끼게 되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 감정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화법이다. 그때 뿜어져 나오는 아이의 울음은 아파서만이 아니다. 어린아이니 그 감정을 뭐라고 정의하지는 못 하겠지만, 일으켜주려 다가가도 어쩌면 아이는 분노의 발버둥을 칠지도 모른다. 

 

상대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면 어떠할까? 안 될 확률 0.1%에 집중해 이야기하고, 잘 안 풀렸을 때 "내가 뭐랬어, 안된다고 했잖아." 하는 식의 대화는 마음속에 분노만 살 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보다는, 풀리지 않는 일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 대안을 고민해주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주는 것이 사람들 간의 올바른 인간관계다. 

 

성인들끼리는 서로 주의하는 화법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무도 쉽게 던지는 경향이 있다. 어린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배려의 말, 청유형 화법이 가족으로서의 진정한 사랑이 깔린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가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드는 원동력이고, 타인에게 청유형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슬기로운 화법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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