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타고 한강을 건넌다. 노약자석에 나란히 앉은 나이 지긋하신 두 분 말소리가 들린다.
"방금 역이 예전에 무슨 역이었죠?"
잠실나루 역 지나며 한 분이 묻는다. 다른 분이 대답한다.
"성내역이었죠."
전철 안에서 보는 한강, 오래전 수첩에 성내역 신천역
성내역,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까마득하게 그 이름을 잊고 있었다. 오래전에 역명이 바뀌었는데도 잠실나루역이 그 성내역이었다는 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2호선은 여전히 같은 노선을 달리는데, 그 속에서 사람만 많이 바뀌었나 했다.
2호선은 어느 도시이고 간에 대부분 순환선이다. 그래서 초행길이라도 일단 마음이 편하다. 방향을 거꾸로 탔더라도 최악의 경우 시간만 더 지체될 뿐 원점으로는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초행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아직까지도 2호선이 편하다.
아주 오래전, 수첩 뒤에 있던 전철 노선도에는 '잠실나루역'의 원래 이름, '성내'가 있다. 그리고 잠실 부근의 또 다른 역 '신천'도 있다. 7호선 구간에 '97년 완공(예정)'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이 수첩은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마다 새로 산 속지만 교체해 사용하면서, 전철표가 있는 페이지는 버리지 않고 새 속지들과 함께 다시 끼워 넣곤 했다. 그때는 스마트폰 같은 게 없던 때라서 이런 전철표가 꼭 필요했다.
'신천'은 개인적인 기억이 있는 곳이라 이름이 '잠실 새내역'으로 바뀐 걸 이미 알고 있다. 땅끝에 있는 시골서 아들(친구네 동생) 공부를 위해 친구네 어머님이 집을 얻으신 곳이 신천역 바로 앞이었다. 오래전이라서 신천역에 몹시 오래된 아파트였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한 계단 디디고 올라서서 연탄불을 갈던 이상한 구조의 주공 아파트였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구조가 무섭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재건축이 완료돼 멋진 아파트가 되어 있다.
해마다 교체했던 속지들과 함께, 매년 전철표와 주요 전화번호 안내 등 정보가 실린 부분은 다시 제자리에 끼워 넣던 수첩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중요한 메모들이 많아서 이제껏 간직하게 됐다. 지금은 검색하면 바로 뜨는 긴급전화나 정부 민원실, 병원 등도 이때는 일일이 찾아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전화번호를 모르면 114에 전화해 상담원에게 문의했다. 듣는 이에 따라 아주 까마득한 이야기다. (라떼 이야기 죄송합니다. 이 카테고리가 이런 용도이니 용서하세요 ^^)
그동안 차가웠던 날씨가 오늘 많이 풀렸다. 한강 지나며 보니 강물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물살이 얼음을 올라타면서 계속 얼어 얼음이 두툼하다. 그래도 강 한쪽은 얼음이 많이 녹아 있다.
사흘 전에도 2호선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넜다. 오늘의 한강보다 더 꽁꽁 언 강이 보인다. 이날은 미세먼지도 조금 있었나 보다. 사흘새 같은 길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인데도 정취가 조금 다르다.
얼어붙은 한강을 전철로 지나면서 보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나도 모르게 자꾸만 흥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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