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하루 또 하루../마음을 담아41 간밤 꿈에 간밤 꿈에 간밤 꿈에 수많은 검정 비닐봉지들을 들고 몽돌이 구르는 해변을 걷는 나를 보았어. 앞서 가던 엄마의 짐을 대신 치켜들고 따라가는 나의 모습이었지. 엄마를 만나는 날에는 그런 모습일 때가 많아. 길 가다가 엄마가 이것 사고 저것 사다 보면 검정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늙은 엄마에게 짐을 맡길 수는 없잖아. 사실 좀 귀찮을 때가 많긴 해. 꿈에서 뭔가 담긴 비닐봉지를 엄마가 하나 더 내밀더군. 마음에 살짝 얹히는 미운 감정 하나. 짐의 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더 컸다고나 할까. "엄마, 나 무거워!" 소리치며 한껏 짜증 내는 나를 두고 서운함이 가득 눈물마저 맺히는 엄마의 눈. 공연히 더 어깃장을 부리고 싶더라고. 그때였어.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진 게. 낯선 곳에 가면 나를 놓칠세라.. 2025. 3. 22. 눈 오는 날 산장에서 눈 오는 날 산장에서 바람이 눈과 만나기로 한 날 깊은 골짜기를 서슴없이 달려온 바람은 예정보다 빨리 산 아래 그늘로 들어섰다 우우웅 우우웅 산장을 휘감으며 푸르게 서 있던 잣나무 사이를 오가던 중에 이윽고 희뿌연 안개를 데리고 눈이 몰려온다 반가울세라 한바탕 뒤엉키며 바람이 히잉~ 말처럼 신음을 뱉는다 잣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눈보라 휘감으며 창을 두드리는데 텁텁한 공기를 탓하는 한 마디에 후끈한 아랫목을 나와 베란다로 나가는 미닫이를 밀어 본다 헤이안 시대 어느 궁녀는 향로봉의 눈은 어떠한가 묻는 중궁의 한 마디에 눈치 빠르게 창에 드리워진 발을 걷어올렸다더라 백거이의 시를 떠올려 밖을 보고 싶은 중궁의 말에 화답한 것이나 어쩌면 화로 앞 훈훈하면서도 답답한 공기에 바깥을 내다보고 싶.. 2025. 2. 24. 사나이로 태어나서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제 갓 일병 된 아들이 집에 와 노랠 부른다 귀에 딱지가 앉게 듣다 보니 저절로 나오는 노래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그 군가를 여태들 부르니? 그렇다고 한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들었으니 상당히 오래된 곡일 텐데 그 노래 제목사나이로 태어나서야? 아뇨, 진짜 사나이 몇 년도에 만들어진 노래일까? 손은 어느새 폰을 뒤지는 중 1962년! 와ㅡ 전투와 전투 속에 헤어진 전우야 월남전 파병때 만들어진 곡이라 한다 가사 속의 전투가 월남전이었다니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고마워 아들 잠 편히 자게 해줘서ㅡ 2025. 2. 13. 극장 앞 연가 극장 앞 연가 그날, 극장 앞에도 눈은 내렸다 밤거리는 검은 눈들이 폭죽처럼 가로등을 스친다 행인들은 옷깃을 세우며 눈길을 지나갔고 그 속에 찾을 수 없던 먼 눈길 때로 가볍게 마주 오는 눈길들에 미소하다가 다시금 그 웃음을 증오한다 웃음이란 거짓 표상이며 그나마 반 밖에 웃지 못하였다 굶주린 이리처럼 두려움만 주었을 뿐 이대로 하나의 눈송이로 함께 불리어 가기를 오래도록 홀연히 극장을 서성이고 있었다 2025. 1. 20. 자전거 자전거 너는 자전거를 타고 머나먼 길을 왔다 했지 순간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나 어느 시에프에서 햇살을 가르며 가슴속으로 들어오던 자전거 나의 자전거는 그렇게만 머리를 스쳐갔을 뿐 먼지와 비로 흐릿한 죽음의 고국을 멀리한 채 가늘게 떨며 낯선 길을 내달렸을 너의 자전거는 불안과 슬픔이 되어 홀로이 이방의 거리를 기웃거린다 너를 닮은 이들에 손을 내밀며 오늘 너는 어디에 있는지 나의 마음속에는 어느 하늘 아래 고개를 떨군 채로 사랑을 그리며 지나는 슬픈 페달 소리가 들려온다 2025. 1. 12. 이전 1 2 3 4 ··· 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