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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빛나는 강, 가족에 관한 서술

by 비르케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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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무어의 소설 '길고 빛나는 강'을 읽으며 가족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됐다. 작품 속 인물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이런 작품을 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 포스팅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들 위주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길고 빛나는 강, 가족에 관한 서술

'길고 빛나는 강'은 도시에 관한, 또 약물중독에 관한, 그리고 가족에 관한 주제들이 얽혀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케이시, 할머니, 사이먼, 아들 토머스, 트루먼, 오브라이언 일가...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전체 플롯을 빈틈없이 엮어가지만,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으니 -내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가족에 관한 부분들만 들여다볼까 한다. 

 

이 작품에는 어린 시절부터 붙어 지내던 미키(=미케일라=믹)와 케이티 자매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들(토머스)만큼은 자신과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미키의 모습도 있다. 세상을 냉혹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할머니, 그리고 멀리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떳떳한 아버지로 서고 싶었던 부정도 있다.

 

1. 연년생 자매

중심인물인 미키와 케이티는 일 년 하고도 몇 개월 차이로 세상에 태어난 자매지간이다. 연년생 자매를 둔 사람이 아니고선 알기 어려운, 아무나 상상할 수 없는 그 친밀감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쌍둥이 자매처럼,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고 숨소리까지 이해하는 사이로 자라난다. 서로의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엄마 없이 모진 할머니 밑에서 살았던 두 인물의 밀착은 어느 누구보다 끈끈하다. 짧게나마 어린 시절의 엄마를 혼자만 누렸던 언니의 입장에서는, 동생을 외면할 수 없는 일종의 굴레가 존재한다. 어릴 적부터 동생 케이티에게 해주던 엄마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였고, 결국 케이티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엄마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부분은 중심인물인 미키가 케이티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근원을 독자가 스스로 이해하게 만든다.

 

 

 

2. 아들을 잘 기르고 싶은 엄마로서의 고민과 좌절

아들 토머스가 없는 삶은 미키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토머스의 친부인 사이먼과 헤어질 때 그녀가 그에게 원했던 단 한 가지는, 토머스가 다닐 유아원의 원비를 대주는 일이었다. 그녀는 토머스가 최상의 유아원에 다닐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것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먼에게는 이미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더 있기도 했고, 그는 가난한 경찰에 불과했다. 결국 유아원의 원비가 끊기는 날이 온다. 미키는 토머스를 데리고 이사를 한다. 유아원도 못 다니는 마당에 무리해서 좋은 집에 살 필요가 없었다. 

 

토머스의 생일에 아이를 위해 전에 다니던 유아원의 친구들을 초대하게 된다. 전남편 사이먼과 셋이서 전에 자주 다니곤 하던 맥도널드에서 토머스의 친구 둘과 아이들의 엄마들까지 여섯 사람이 함께 모인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 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한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암초에 직면한다.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에게 햄버거를 먹지 말기를 바라며 계속 타이른다. 이렇게 조촐한 자리인줄도 모르고 도시락을 먹이려고 싸왔는데 분위기상 햄버거를 안 먹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리인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생일파티에 참석하고자 아이와 함께 이 멀고 후줄근한 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문을 몰라하는 토머스.. 불행한 사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이먼의 단골집이기도 한 이 맥도널드 매장에 그가 나타났다. 생일축하를 해주러 온 줄 알고 아빠를 향해 달려가는 토머스, 새로운 가족과 옛 가족사이에서 당황스러워 하는 사이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미키, 생일에 초대받은 사람들.. 별생각 없이 시작된 생일파티는 토머스의 눈물로 막을 내린다. 

 

 

 

3. 할머니

할머니는 미키와 케이시 자매를 어릴 때부터 길러준 양육자이지만 그녀들에게는 늘 냉정한 할머니다. 미키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재정지원서를 써주는 일도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나 딸을 잃고 딸의 아이 둘을 맡아야 했던 그녀는 당시 40대의 싱글이었다. 형편도 가난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다. 더군다나 중독자였던 딸이 낳은 아기는 금단현상으로 인해 종일 울어댔다. 할머니에게 애초에 미소가 있을 리 없었다. - 온종일 울어대는 아기로 인해 미키가 속상해하자 할머니가 말한다. "둘이라고 생각해 보렴."

 

 

 

4. 꿈꾸는 가족

둘도 없는 혈육인 케이시가 점점 약물에 빠져가고, 집에는 희망이 없어 보이자 미키는 집에서 그만 나가고 싶어 진다. 그렇게 가족과 멀어져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집에서 불행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빨리 결혼해서 집을 나가고 싶어한다고 한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로 결혼을 택하는 이야기, 이 작품도 그 비슷한 이야기로 끝이 나는 줄 알았다.

 

이야기의 실체가 드러날 즈음 또 다른 전환점이 생겨나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반전 치고는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는, 백프로 공감이 가는 전환점들이다.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이야기들에 반감이 설 자리가 없다.

 

장편 '길고 빛나는 강'의 스토리 중에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만 따로 정리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부분도 더 관찰해보면 좋을 듯하다. 너무도 오래 펼치고 있던 책이라 이쯤 해서 보내고, 다음에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그때 더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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