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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어느 중국인이 내게 던진 황당질문

by 비르케 200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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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버스를 탔습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잠시 후 버스가 지나는 대로변 앞쪽으로 자전거 한 대가 달려가는 게 보이더군요. 버스의 속도가 빠르니 자연스레 앞쪽에 있던 자전거는 버스의 뒤로 지나쳐 갔습니다.   
순간 그 뒷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라, 돌아보려다 그냥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떠오른 게, 결코 보고싶지 않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었거든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지요.
버스가 신호 대기중인 사이에 그렇게 지나쳐 간 그 자전거가 바로 옆으로 다시 한번 지나가더군요.
자전거 위의 그 남자, 앞이나 똑바로 보고 갈 일이지, 저를 찌르르~ 한 눈으로 째려보며 갑니다.
누구라도 결코 웃어줄 수 없는 눈길...

이 남자는 중국인 남자입니다.
제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여자애의 아버지지요.

그와 얽힌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작년 초여름 무렵, 아이들이 3박4일 캠프를 갔다가 돌아오던 날이었습니다. 부모들은 학교에 마중을 나가, 돌아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당시 아직 학교에 입학을 하지 않아 제 곁에만 붙어있던 작은애를 데리고, 둘이서 큰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큰애의 선생님이 자가용으로 먼저 도착하시더군요. 
독일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겨우 두어달 만에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라 어땠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선생님과 한 마디라도 하려는 와중에, 선생님은 제 마음이라도 헤아리시는 듯 가장 먼저 제쪽으로 와서 아이의 근황을 소상히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한참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그 중국인 남자가 저를 노려보며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척 기분 나쁜 시선으로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선생님에게 말을 붙이지도 않더군요. 선생님은 다른 부모와 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 중국인이 좀전과는 달리 친절한 얼굴이 되어 제게로 와 말을 걸더군요. 
부드러운 얼굴로 먼저 말을 거는 걸 보면서, 저도 경계심을 즉각 해제했습니다. 같은 동양인인 제 눈에도, 동양인들 중에 '그냥 바라만 봐도 째려보는 듯한 눈'이 가끔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무심코 바라본 눈인데도 내게는 그리 보였던가 보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더군요. 
제 독일어야 지난 십여년 동안 다 까먹고 괴발개발하는 정도지만, 그 중국인은 중국인 답지 않은 매끄러운 독일어 발음(중국인들은 영어 발음은 때로 우리보다 나은 듯 한데, 독일어 발음을 엉망인 경우가 많습니다)으로 '능숙한 독일어'를 구사하더군요. 

여기는 왜 왔느냐, 여기서 뭐 하냐,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 집은 어디냐 ...
그가 점점 사적인 질문을 툭툭 던지는 가운데, 대답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바로' 이어지는 질문공세에, 갑자기 취조라도 당하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어, 결국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대신 이번에는 작은애에게 말을 걸더군요. 물론 독일어로요.

남자 : "할로(Hello)!"
작은애: "할로(Hello)!"
남자: 너희 나라 어디야?

당시에 할 줄 아는 말이라곤 "할로(Hello)!", "당케(Thank you)!" 정도 밖에 없던 작은애를 두고 자꾸만 말을 시키길래, 얼른 나서서 '아직 독일어 못한다'고 대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남자, 제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계속 아이에게 말을 시키더군요. 

남자: "독일 오니 좋아?"
모르는 아저씨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꾸만 말을 걸어주니 작은애는 멋적게 웃고만 있더군요. 지칠 줄 모르는 이 남자, 계속 '독일 오니 좋냐'는 말을 반복하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나라 가고 싶지 않아?"
서서히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하더군요. 

"너희 나라 안 가고 싶어?" 
이젠 정말이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이해하지도 못 하는 애를 두고 계속해서 제게 들으라는 듯, 말을 툭툭 던지던 그 남자...
잠시후 이런 말을 합니다.

"독일 음식 맛있어? 너희 나라 음식 안 그리워? 개고기 안 먹고 싶어?"
순간 눈앞이 온통 새하얘지더군요.
 
"뭐라구요? 뭐라고 한 거예요, 애한테?" 하고 얼른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 남자, 표정에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비실비실 웃음을 띈 채 제게도 묻더군요.
"개고기 안 그리워요?"

정말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게 바로 그런 기분이겠지요.
태어나서 이제껏 입에 대보지도 않은 개고기건만,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왜 내가 다른 것도 아닌 개고기에 대한 변론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와중에도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이 작자의 덫에 빠지는 꼴이 되므로, 우선 마음의 평정을 얼른 찾고는,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본인: "개를 먹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안 먹구요, 한국에 안 먹는 사람 많습니다."
남자: "에이~ 다 아는 사실인데 뭘. 당신네 나라 개 먹잖아!"

그 즈음 옆에 서 있던 다른 부모들이 갑자기 그 남자와 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지더군요.
당시에는 학교에 한국애가 우리 큰애 딱 한 명 밖에 없었고, 중국애도 그 집 아이가 전부였습니다. 
딱 두 명 있는 동양인 애들의 부모 둘이서 벌이는 대화가 그거였으니, 귀 기울일 만도 하지요?

본인: "내가 보기에는 안 먹는 사람이 더 많구요, 더군다나 나는 베지태리언이니 더 이상 
        그런 말은 내게 하지 마세요." 
        
눈썹하나 까딱 않고 쏘아부치니, 그제서야 꼬리를 내리며 엉뚱한 소리를 하더군요. 
남자: "그래도 애들은 고기 꼭 먹어야지!"
본인: "나만 안 먹어요. 애들은 고기 먹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고기는 안 먹어도 닭고기는 좀 먹습니다. 하지만, 저를 몰아부치고 있는 사람에게, '쇠고기, 돼지고기는 안 먹고 닭고기는 먹고...' 이런 설명까지 늘어놓고 있자면 꼭 변명처럼 보일 것만 같아서 그냥 '베지태리언'이라고 하고 말았습니다.
변명으로 보이고 말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이 남자에게 말꼬리라도 잡혔다가는 내게 엄청 불리할 거란 느낌에, '베지태리언'이라는 한방만을 쏘아부치고 만 것이죠.
여러 사람이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와중에 단칼에 그의 말을 자를 말이라고는 그것밖에 얼른 생각이 나지 않기도 했구요. 

제가 알기로는 중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개를 먹습니다. 개 뿐이겠습니까, 혐오식품으로 따지면 결코 우리에게 뒤지지 않을 중국입니다. 하지만 그가 제게 하듯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에게 따지고 들어봤자 득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은근히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다른 부모들이 과연 '한국이 더 낫네!'라고 생각해 줄까요? 그저 그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이라곤 두 나라를 다 싸잡아, '별걸 다 먹는 추한 동양 사람들의 모습' 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할 말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은 그도 할 말이 없으니, 언제든 논란이 되곤 하는 이 복잡한 테마는 이걸로써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반론을 해보지 그랬냐고 하실 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국내 사이트에 들어가 논쟁의 중심에 한번 앉아 보십시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고 분란만 일어나는 문제거늘, 제가 어떻게 '제대로 된 논쟁'에 대한 기본 자세도 갖추지 못한 그 중국인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언어적인 부분까지 딸리는 상황에서요.   

어쨌든 그 날 '개고기 문제'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은밀한 관심을 꺼버리는 데만 그치고 나서, 그 다음으로 한 일은, 복수하듯 그에게 가한 저의 '질문공세'였습니다. 그가 그랬듯 저도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독일에 얼마나 있었냐, 여기서 뭐하냐, 집은 어디냐... 미소 한 자락 없이요.

독일에 온 지 10년 되었다고 합니다.(- 십년 있어도 한국 사람들 중에 이렇게 독일어 잘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인이랑 중국인이 많이 다르기라도 한 것일까요.
의사라고 하네요. 집은 학교 있는 곳에서 멀다고 합니다. 말해도 모를 거라고..

10년 있었다는 말은 진위를 알 수가 없지만, 나머지는 거짓임이 거의 판명이 났습니다. 
당시 제가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될 때였고 차도 없다 보니 마트에 오갈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너무도 자주 그와 마주치게 되더군요. 의사가 어떻게 시간이 그리도 많을까요. 물론 우리나라 의사와 달리 이 곳 의사들은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마트를 누비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학교가 끝나는 시각쯤에는 날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도 옵니다. 한겨울이 아니고선 늘 반팔 티셔츠에, 똑같은 반바지 차림으로 말입니다. 절대 환자를 진료하다 온 모습이라곤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집이 학교에서 멀다면서, 차도 없이, 버스도 타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 다닙니다. 학교에서 네 정거장쯤 되는 거리에서 아이를 마중하러 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본 적도 있지요. 그러니 뻥 잘 치기로 이름난 그의 출신국의 오명을 그가 제게 여실히 보여주고 만 셈입니다.










<< 우리나라 개와 외양이 흡사한 개를
    독일에서 보았답니다. 너무 신기해서
    찍어보았어요.


개고기 사건이 있고 나서, 속은 터졌지만 아이들에게만은 죽어라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괜한 말을 했다가는 같은반 친구와도, 또 친구 아빠와도 이상해지고 말테니까요.
그런데 애들에게 물어보니, 이 남자, 이제는 제 아이들이 인사를 해도 아는 체도 안 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고, 어른이란 사람이 인사를 안 받는다니, 우습지요? 

외국에 나오면 한국인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사람 꼭 있습니다. 별 이유도 없이 미워합니다. 첫대면한 제게 그 남자가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 처럼요. 그런데 참 희안한 게, 같은 동양권 사람들, 그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이목구비가 비슷한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이 친해도 가장 친해지고, 멀어져도 가장 멀어지더군요. 서로간에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만요. 독일과 프랑스가 으르렁거리고, 프랑스와 영국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에 대만인 친구 하나도 제게 참 좋은 친구였건만, 밑바닥에 늘 '반한감정' 내지는 '한국인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게 도사리고 있어 사람을 힘들게 했습니다. 결국 끝을 보고 말았죠. (관련글: 렌 1)    
표정만 봐도 바로 알아차릴 만큼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가끔 몇몇 사람들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도 한국을, 또 한국인을 미워합니다. 작년 올림픽을 떠올려 보아도 중국인들의 반한감정 사례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저는 그나마 중국이나 대만 사람에게서만 보았는데, 주변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 친구들이랑은 편하게 잘 지내던 기억밖에는 없는데 말입니다.

돌려 생각해 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만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터넷 댓글들을 봐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들은 쉽게 찾아볼 수가 있으니까요. 고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모두가 빈번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에게 반(反)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닮은 이웃나라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지라도 서로 상처주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반한감정을 버리라 하기 전에 당장 우리부터 서서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아까의 그 중국인 남자처럼 황당 케이스는 그런 노력도 힘들어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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