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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보..

유럽 거리를 굴러다니는 무늬만 밤

by 비르케 200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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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카스타니'라 불리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는 가을마다 밤이 떨어집니다. 때로 사람의 발이나 차 바퀴에 의해 노랗게 짓이겨지기도 하면서 도로와 숲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이 밤들은 독일어로 정확히 '로쓰카스타니(Roßkastanie)입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혼자 생각하기를, '독일 사람들은 밤을 먹지 않아 밤이 땅바닥에 굴러 다니도록 쳐다보지도 않나?'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수퍼에서 '식용 밤'을 파는 걸 보고는, 과연 왜 길에 굴러다니는 밤은 안 먹는 것인지 더 궁금해졌는데, 작년에야 비로소 그 미스테리를 풀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숲에 떨어진 카스타니의 열매를 몇 개 주워와 맛을 보았습니다. 못 먹을 음식인줄 애초부터 아는 이들이야 맛을 볼 기회도 없었겠지만, 그것이 먹는 것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저 같은 사람은 기어이 맛을 보고야 그 열매의 쓴 맛에 고개를 내두르게 되었지요. 

                                    ▲ 뭔가를 만들겠다고 송곳으로 찔러둔 카스타니 열매

나중에 알고 보니, '로쓰카스타니'라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서양칠엽수'라 불리워지는 나무더군요. 그러나 그 이름보다는 프랑스어 그대로, '마로니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문학 작품이나 노래에 등장하는 것 만큼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먹지도 못할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밤'이 열리는 '로스카스타니'와 달리, 식용 밤이 열리는 밤나무는 독일에서 '에쓰카스타니(Eßkastanie)'로 불리워집니다. 하지만 '에쓰카스타니'는 우리나라에서 처럼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카스타니'라고 하면 독일 사람들은 당연히 '로쓰카스타니(마로니에)'를 먼저 떠올립니다.

'로쓰카스타니', 즉 서양 칠엽수의 열매는 비록 먹을 수는 없지만,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가지 장식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식용 밤처럼 벌레 먹을 일도 없고, 오래 보관이 가능하므로 장식은 겨울을 넘기고 일년이 다 되어도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기만 할 뿐, 상하거나 물러지지 않습니다.
작년에 주워와서 집을 장식했던 카스타니는 얼마 전 아쉽게도 별 생각없이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습니다. 포스팅을 하게 되니 그때 사진 한 장 남기지 못 한 것이 조금 아쉬워지기도 합니다.

대신, 올해의 카스타니 아이들과 장식을 해 보았습니다. 카스타니 열매로 사람을 만들겠다고 작은애가 학교에서 손을 송곳에 찔려가며 만들어 왔었는데, 여기 저기 찔러 놓은 구멍만 무성한 채로 마구 굴러다니기에, '이왕에 장식할 거 몇 개 더 주워서 해야지!' 하고 중간에 밖엘 나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지각도 한참을 지각하고 말았더군요.

요즘 독일은 겨울옷을 꺼내 입고 다닐 만큼 추위가 엄습해서 단풍이 들 새도 없이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카스타니 열매들도 다 떨어져 사라지고 없더군요. 제가 간 숲 부근에 마을 유치원과 청소년 운동장 등이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행사라도 한 것인지, 껍데기는 굴러다니는데, 정작 카스타니 열매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것은 점점 색이 바래고 있는 나뭇잎뿐이었습니다. 가을이 간 지도 모르게 가버려 참 서운합니다.     

                           ▲ 갈빛이 되기도 전에 바람에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한 카스타니 

                       ▲ 카스타니 열매의 껍질입니다. 껍질을 보면 밤과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여담이니 지나가셔도 됩니다. 주말이라 끝없이 젖어드는 가을 생각에... ^^
카스타니, 즉 서양칠엽수(프:마로니에)는 '나도밤나무'과(科)에 속하는 수목입니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이 이름들 너무 재미나지 않습니까?

나도밤나무는 몰라도, 제가 아는 '너도밤나무'는 이런 이름을 붙이기에 좀 억울할 것 같은 나무입니다. 독일에서 '부케(Buche/ -- 카스타니 아님)'라 불리우는 이 나무는, 갈색으로 변해 후줄그레해지는 밤나무 종류와는 다르게, 너무도 아름다운 빨간색 단풍이 듭니다. 그 색깔은 뭐라 형언하기 힘들 만큼 오묘하지요. 아마도 '이왕이면 다홍치마'의 그 '다홍'정도나 될까요..
그런데도 '너도밤나무'라니, 왠지 어쩌면 그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도 있었을 법 한데, 어쨌든 이름에서 풍기는 바와는 달리, 참 아름다운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클림트 같은 화려한 화가가 그려낸 나무이자, 그 이름을 들으면 왠지 '홈즈 시리즈' 중 '너도밤나무 집의 수수께끼'라는 작품때문엔지 괴기스러움마저 감도는... 어쨌든 아직 보지 못 하신 분들은 나중에 보실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서양칠엽수 이야기에, 갑자기 생각난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이야기까지... 한국에서는 한창일 가을을 이렇게 먼저 보내며(일기예보에서 따뜻한 날은 갔다고 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제가 좋아하는 '나무' 이야기를 한껏 떠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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