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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

이청준의 동화에서와 같은 어긋난 자식 사랑

by 비르케 201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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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이 타계했을 때 나는 타국에 있었다. 멀리서 아슴하게 들려오는 그의 부음에 참 가슴이 아팠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달고 산 책들 중에 그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 읽었던 책들이, 같은 작가의 것이든 다른 작가의 것이든, 한데 섞여 내용마저도 가물가물하다.

 

몇 년 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읽게 된 책 속에 반갑게도 이청준의 것이 있었다.

 

 

 

 

파랑새 창작 문학 시리즈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청준의 판소리 동화' 다섯 권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옹고집 타령- 옹고집이 기가 막혀>는 고전 '옹고집'의 내용에다가 이청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교훈적이면서도 매우 해학적이다. 초등학생 대상의 책이지만, 이청준 특유의 '글을 풀어가는 힘'이 느껴져 어른이 읽어도 괜찮다.

 

<옹고집 타령-옹고집이 기가 막혀>는 놀부만큼이나 못된 짓을 하다가 벌을 받게 되는 옹고집의 이야기다. 옹고집에 관한 소문을 들은 어느 도사의 술책으로, 옹고집은 가짜 옹고집과 뒤바뀌어 고생길에 오른다. 결국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내용에는 원본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동화에서 옹고집의 자식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좀 독특하다. 온갖 못된 짓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의 아들 명칠(아명은 두칠)에게만은 고슴도치 사랑을 실천하는 옹고집... 물론 이청준이 가미한 이야기다. 

 

고집이 세고 욕심까지 많은 명칠이 못된 짓을 하면, 자신을 닮은 모습에 뜨끔해서 아들을 혼낼 법도 한데, 옹고집은 오히려,

"옛말에 '승어부'는 효도가 된다 했느니라. 무슨 일이든 아비를 앞서는 것은 좋다."

고 칭찬 비슷한 말을 하며 대견해 한다.

 

'승어부(勝於父)'의 참뜻은 좋은 일에 아들이 아버지를 앞서는 것이지만, 옹고집은 옛말마저도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버릇이 있었으니, 심술꾸러기 자식에 대한 사랑에도 예외가 아니다.  

 

병들어 누운 어머니에게는 찬방에 꽁보리밥과 나물죽만 주고 약 한 첩 쓰지 않으면서,

''인생칠십고래희'라 했는데, 어머님은 이미 여든 살이 넘으셨으니 지금 돌아가셔도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그만한 연세에 더 오래 살면 몰골만 흉해지고 망령기도 더해지기 마련이다.'

라는 말을 일삼는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사람이 나이 일흔을 넘기기 어렵다 뜻으로, 일흔을 넘긴 노인에게 축복의 의미로 쓰는 말인데, 옹고집은 이 말도 자기 편할 대로 '일흔 넘게 살았으니, 그만큼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결국 옹고집은 못된 짓만 일삼다가, 도술로 만들어진 가짜 옹고집에게서 내쫓김을 당한다. 자신과 꼭닮았지만, 짚으로 만든 가짜 옹고집은 늙은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고 자식 교육에도 모범적이다. 그 결과 집에서는 웃음꽃이 피고, 심술꾸러기 명칠도 의젓하고 멋진 청년이 된다.

   

"이렇게 의젓하고 미더운 아이가 될 것을! 전날엔 왜 그리 망나니짓을 일삼아 지냈더냐. 자식의 허물이 곧 아비의 허물이라, 이 아비를 생각해서라도 옳은 사람이 되거라."

가짜 옹고집은 명칠에게 이렇게 가르치곤 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마침내 옹고집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가짜 옹고집이 이미 짚풀만 남긴 채 사라지고 난 후다.

 

여지없이 이런 의문이 든다. 가짜 옹고집이 만들어놓은 착한 명칠이는 진짜 옹고집이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착하게 살 수 있었을까. 진짜 옹고집이 가짜 옹고집의 교육에 있어서의 소신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명칠이 다시 망나니가 되지 않고 계속 의젓하고 멋진 청년으로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난 우리 아들한테 맞지 말고 같이 때리라고 가르쳐. 내가 그 정도 치료비물어줄 수 있으니까."

 

얼마 전 만난 어떤 이가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들어 그가 급작스레 축적한 부에 대한 자랑질의 일환이었을 테지만, 어쩌면 진짜로 아이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 옹고집이 그랬듯이, 틀렸으면서도 어쩐지 맞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자기만의 이른바 개똥철학은 자식에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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