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읽었던 글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예전엔 느껴보지 못 했던 새로운 느낌을 맛보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도 모른 채 그냥 교과서에서 슬렁슬렁 지나쳐 읽었던 글인데, 세월이 흐를 만큼 흘러 우연히 그 글을 다시 대하게 되면 왠지 감회가 새롭다. 오래 전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과 같은 반가움과 긴 여운도 있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야 실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가슴이 절절해진다. 얼마 전 읽은 주자청(=주쯔칭)의 글이 그랬다.
주자청(朱自淸: 1898~1948)은 중국 격변기를 살다 간 시인 겸 평론가이다. 그는 <아버지의 뒷모습> 이외에도 <달밤의 연못>, <여인>, <봄>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산문은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묘사가 돋보인다.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총 35편의 산문이 함께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어릴적 교과서에서 본 작품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자신 또한 힘든 처지임에도 자식을 먼저 챙기는 부정(父情)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6쪽 짜리 짧은 산문이라서 되도록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내용은 이렇다.
2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보지 못 했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픈 이유는, 2년 전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던 그날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다. 당시에 두 가지 불행을 겪었다. 하나는 아버지의 실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집이 너무도 엉망이라서 평소에 단정하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생각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집안에 팔 것들을 팔아서 그간의 빚을 정리했지만, 할머니 장례에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또 남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는 일을 구하러 난징으로 가고, '나'는 학업을 위해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난징에 갔다가, 거기서 헤어지기로 했는데, 배웅을 못 해준다고 했던 아버지가 기어이 시간을 내서 역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아들을 위해 짐꾼들과 실랑이까지 벌여가며 짐을 기차에 올려주고, 차창 쪽으로 자리까지 잡아준 후 '조심해서 가라,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해라' 등의 걱정 섞인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기차 안의 판매원에게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 연신 부탁을 한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아버지가 한참 답답해 보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 귤이나 몇 개 사올 테니, 여기 가만히 앉아 있거라."
이 부분부터 작가가 차창 유리창을 통해 아버지의 뒷모습을 관찰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건너편 플랫폼에 있는 귤을 사오기 위해 플랫폼에 내려갔다가 건너편 플랫폼 위로 뒤뚱거리며 올라간다. 그리고는 귤을 사서 다시 같은 길을 되짚어 온다. 지금은 플랫폼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아마도 교과서에서 이 작품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던 때만 해도 중학교 교과서에 이 부분만 실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는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실제 있었다. 어쨌거나 작가는 그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식을 위해 뭐든지 해주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 묻어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오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결국 나이가 들어 떠오르는 장면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 그 장면 하나 하나를 잘 채워야, 부모와 자식간이든, 부부간이든 좋은 인연으로 서로를 위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귤을 사러 플랫폼을 가로지르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최근 들어 가끔 울분을 토로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화자(話者)다. 젊었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타관을 떠돌았던 아버지인데, 노년을 이렇게 곤궁하고 쓸쓸함 속에 살고 있으니 어찌 괴롭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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