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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토끼와 달걀

by 비르케 200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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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왜 토끼가 없어요?"
하는 작은애의 물음에,
"웬 토끼?" 했더니,
뾰로통한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온다. 

"집에 토끼 있는 사람 손 들라고 했는데, 나만 안 들었어요."
순간, 멍 하다가
이내 알아차리고는,

"아~ 부활절 토끼 말이구나?"
했더니, 
여전히 삐친 음성으로

"네." 하는 녀석...

얼마전에는 사육제(독일에서는 '파슁 Fasching')라고 갑자기 변장옷이 없니 어쩌니 해서 불이 나케 시내를 뒤져, 삐에로 옷을 사느라 반은 넋이 나가게 하더니, 이번엔 다음주부터 부활절 휴가라서 또 토끼 이야기다.
 
"너도 손 들지, 너 토끼 인형 있잖아." 했더니 끝끝내 아니라 한다. 
그 인형은 그냥 '토끼'일 뿐, '부활절 토끼'는 아니라는 것...
"그럼 토끼 대신에 부활절 달걀 만들까?" 했더니, 그제서야 기분이 조금 풀리는 얼굴이다. 

장 보러 가는 길에 가끔 부활절 달걀에 칠하는 물감들이 보이길래, 그것만 사다가 삶은 달걀에다 칠하라고 할 요량이었건만, 옆에 있던 세오가 더 환호성을 지르며 당장 하자고 성화다. 
물감도 없이 뭘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달걀만 있으면 된다 한다. 그리고선 덧붙이기를, 다른 집들은 벌써 장식을 다 했다나 어쨌다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미술시간에 '부활절 달걀'을 만들어 봤다면서, 알아서 한다고 엄마는 나가서 하던 일 하라는 고마운 말까지... 하지만 돌아선지 채 5분도 안 되어 '퍽!' 하는 달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치를 한껏 보며 서 있는 녀석들의 기를 일순간에 죽일 수는 없어서, 고이 참고 깨진 달걀을 주워 담고 있는데, 잠시 후 내게 하는 소리가, "엄마, 달걀 좀 바늘로 찔러 주실래요?"

뭐시라... 영문을 몰라 하는 나를 보며, 한 마디 덧붙인다는 말이, 
"에이, 근데 이거 더러운데... 달걀 양쪽을 찔러서요, 입으로 힘껏 불면 다른 쪽으로 물이 다 흘러 나와요." 

그러니까 지금 내게 날달걀에다가 입을 대고 불어달라는 말인가?
아무리 깨끗이 씻는다고는 해도, 생각할수록 속이 다 역겨워 지는데,
세오 말이, 지난 번 미술시간에는 한 아이가 세오를 포함, 반 애들꺼를 거의 다 불어 주었다고 한다. 
착하다고 해야 할지, 비위가 좋다고 해야 할지...

'설마 바늘로 될까?' 하는 나의 예감대로, 아무리 속을 달래가며 날달걀에 입을 대고 불어도 안에 있는 달걀물은 흘러나오질 않는다. 정말 바늘로 하는 게 맞느냐 물으니, 나중에야 '송곳'이라 한다. 우리집에는 송곳이 없어서 바늘로도 될 줄 알았다나...
'그럼 그렇지!' 하며 대바늘이라도 가져다 뚫어 보려니 달걀 껍질이 깨져버리고 만다. 

결국 바닥에 깨져서 버린 달걀 하나와, 뭘 만들어 보겠다 실랑이 하던 달걀 두 개가 박살이 나고서야 
'부활절 달걀 만들기' 소동은 일단락 되었다. 

깨진 달걀로 후라이를 해서 저녁을 먹으며, 다시 한 번 궁금해 진다. 
'송곳으로 뚫은 다음 세게 불면 진짜 달걀물이 흘러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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