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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마음을 담아44

지는 모습도 단아한 지칭개를 보다 지는 모습도 단아한 지칭개를 보다 흐린 하늘 아래 어제 봤던 지칭개 꽃길 지난다꽃받침만 남았는데 어쩜 이리 예쁘냐하얀 솜털을 화려하게 날리던그날도 있었는데그 보랏빛 꽃이 지고꽃받침도 꽃처럼 피고 지는지칭개그렇게 자손을 번창시킬 필요도 없는데자체로도 충분히 예뻤는걸너무 퍼트리니 잡초 소리를 듣던 너 필 때도 솜털을 날릴 때도 질 때도 누구의 손길 없이도아름다운 들꽃참 고왔다너의 모습 모든 솜털을 다 날리고꽃받침만으로 이야기했어 해가 뜬다고해가 진다고비가 내린다고바람이 분다고 어떤 날은 어떤 시간은어떤 모습으로 열고 닫을지 오늘은꽃받침 고이 접은네 곁은 지난다 단아하게 져 가는너의 모습 질 때도 무너지지 않고 꼿꼿이 말라가는청순한 너의 모습 2025. 7. 7.
텃밭 농사 메모 텃밭 농사 메모주말농장을 연이어 두 해째 한다. 작년에는 초보답게 상추로 한 이랑을 채웠다. "상추 장사 나가요?" 지나가던 사람의 한 마디를 이해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먹지도 못할 만큼 상추가 우거졌다. 나머지 땅에는 감자와 강낭콩도 심었다. 초록잎들이 한꺼번에 나왔지만감자 싹인지 강낭콩 싹인지 구분할 수는 있게 됐다. 5월엔 빈 땅에 고추도 추가로 심었다. 고추가 그렇게 무성하게 달릴 줄이야. 감자와 강낭콩은 장마가 오기 전에 꼭 수확해야 한다기에 온종일 만사 제쳐놓고 흙에서 산 날도 있었다. 흙 속에 손을 쑥 집어넣으면감자와 벌레들이 만들어둔 부슬부슬한 흙의 촉감이 좋았다. 손수 키운 두백 감자는 포슬포슬 쪄서 간식으로도 먹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가을엔 고추를 수확했다. 모종 몇.. 2025. 6. 7.
엄마의 그릇장 엄마의 그릇장 어릴 때 엄마가 그릇장을 새로 들였다 엄마의 아끼던 그릇들보다 그 그릇장이 더 좋았다 나무틀에 유리가 끼워져 있고주물 손잡이가 달랑거리던 나중에 버리려거든 이거 나 줘? 막 들여온 그릇장을 달라는 어린 딸 한 마디에 엄마는 어이없어 크게 웃었다 그래 니 가져라 몇십 년 흘러 그릇장은 문짝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베란다에 두었는데 어느 날 비가 들치더니 곳곳에 푸르뎅뎅한 녹도 묻어나기 시작했다나 엄마가 아끼던 그릇들은 이미 싱크대 수납장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까르르 웃는 내 아이 들여다보느라 그때는 친정에 그릇장도 다른 무엇도 흘낏 보고만 말았다 그 아이가 자라 대학생이 될 때도그릇장은 여전히 엄마네 있었다 세월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그로부터 세월이 더 흘러 칠순의 엄마가 이사하던 날 .. 2025. 5. 21.
간밤 꿈에 간밤 꿈에 간밤 꿈에 수많은 검정 비닐봉지들을 들고 몽돌이 구르는 해변을 걷는 나를 보았어. 앞서 가던 엄마의 짐을 대신 치켜들고 따라가는 나의 모습이었지. 엄마를 만나는 날에는 그런 모습일 때가 많아. 길 가다가 엄마가 이것 사고 저것 사다 보면 검정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늙은 엄마에게 짐을 맡길 수는 없잖아. 사실 좀 귀찮을 때가 많긴 해. 꿈에서 뭔가 담긴 비닐봉지를 엄마가 하나 더 내밀더군. 마음에 살짝 얹히는 미운 감정 하나. 짐의 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더 컸다고나 할까. "엄마, 나 무거워!" 소리치며 한껏 짜증 내는 나를 두고 서운함이 가득 눈물마저 맺히는 엄마의 눈. 공연히 더 어깃장을 부리고 싶더라고. 그때였어.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진 게. 낯선 곳에 가면 나를 놓칠세라.. 2025. 3. 22.
눈 오는 날 산장에서 눈 오는 날 산장에서 바람이 눈과 만나기로 한 날 깊은 골짜기를 서슴없이 달려온 바람은 예정보다 빨리 산 아래 그늘로 들어섰다  우우웅 우우웅 산장을 휘감으며 푸르게 서 있던 잣나무 사이를 오가던 중에 이윽고 희뿌연 안개를 데리고 눈이 몰려온다 반가울세라 한바탕 뒤엉키며 바람이 히잉~ 말처럼 신음을 뱉는다  잣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눈보라 휘감으며 창을 두드리는데  텁텁한 공기를 탓하는 한 마디에 후끈한 아랫목을 나와 베란다로 나가는 미닫이를 밀어 본다  헤이안 시대 어느 궁녀는 향로봉의 눈은 어떠한가 묻는 중궁의 한 마디에 눈치 빠르게 창에 드리워진 발을 걷어올렸다더라  백거이의 시를 떠올려 밖을 보고 싶은 중궁의 말에 화답한 것이나  어쩌면 화로 앞 훈훈하면서도 답답한 공기에 바깥을 내다보고 싶..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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