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시내에서 호미곶을 향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구룡포 앞바다다. 어차피 지나는 길이니 짭조름한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구룡포 앞바다를 보기 위해 잠시 멈췄는데, 문득 사람들의 행렬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멀리로 '일본인 가옥거리'라는 현판이 보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장소였다. 일본인 가옥거리,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일본인들이 살던 곳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원래는 더 크고 활성화 된 동네였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일본인의 거리는 일부러 찾아가기에 규모 면에서 아쉬움이 좀 있다.
각각의 건물들과 소품에는 관련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어 당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의상체험을 할 수 있는 상점도 있다. 특이하게도 한복과 기모노, 중국옷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활기로 가득한 예전 사진들을 보노라니 과거의 영광이 여실히 느껴져왔다. 곳곳이 사람들로 넘쳐나던 때도 있었구나 하면서 사진 하나 하나를 재미있게 살펴보던 와중에...
여명의 눈동자... 이곳이 바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위'에 빛나는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임을 알게 되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오직 생존만을 위해 온갖 시련을 겪게 되는, 평범했지만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세 남녀의 이야기다. 정말로 '드라마틱'한 드라마 그 자체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사진으로 보게 되니 당시의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일본인 가옥거리 가운데쯤에 구룡포공원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니 구룡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아까 과거 속 광경들보다 활기는 더 없지만, 여전히 배들은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처음 그 입구에 할아버지 두 분이 나란히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처음 사진과 같은 곳인데, 느낌이 달라서 사진을 또 한 컷 찍었다. 아니, 그보다 어쩌면 이 두 분을 찍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연세가 드실 때까지 한 동네에 나란히 앉아 담배 한 대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두 분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구룡포 인근에는 대게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줄을 지어 있다. 일본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유입이 많았던 것도 그만큼 이곳이 풍부한 어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리에 서게 되면 대체 어느 가게에 들어갈 것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대게, 물회들의 거리가 한참 이어진다.
여름 구룡포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똑같은 바다인데 풍경은 그때마다 다르니, 살아갈수록 자연이란 대상에 더 감탄하게 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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