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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구순 어르신의 선택

by 비르케 201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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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친지가 있어 갔다가 옆 침대에 구순(九旬) 어르신이 아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들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중이고, 어르신은 자기 병이 무슨 병인가만 알면 된다고, 수술 같은 건 안 받을 거라고 했다. 이 나이에 뭔 수술이냐고, 사는 날까지 살다가 옥황상제님이 부르시면 가면 된다고...

 

그 전에도 비슷한 실랑이가 있었던 듯, 아들은 실망스런 표정만 짓고 있는데 반해, 어르신의 얼굴은 몹시도 평온해 보였다. 새삼 죽음을 앞에 두고도 초연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살다보면 늙고 병듦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구순의 어르신처럼 나이가 많아졌을 때 그런 시간이 오면 더 살기 위해 수술을 강핼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 삶을 정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만 않다.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생명 연장이 가능해지면서 평균 수명은 길어졌을지 몰라도 인간의 끝은 더욱 처절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입원하고, 수술하고... 깨끗이 살다 죽을 수도 있는 삶을, 살을 쨌다가 꿰매고, 호스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간다. 치매 또한 인간이 오래 살게 되면서 인생의 끝에 찾아오는 주 질환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품위 있는 죽음과는 아주 먼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준 채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는 이 시점에서도 한번 새겨볼만한 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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