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페르스바흐를 떠올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침부터 영화 '흑인 올페' 중 'Morning of the Carnival'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 나왔고, 마침 그 음악은 예전 포스팅 '페르스바흐 가는 길'을 쓸 무렵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음악이라...
독일에 살 때 내가 주로 가던 내 삶의 반경 중에서 북쪽 인근으로는 페르스바흐가 있었다. 맘 먹으면 언제든 가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어쩐지 가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렴풋이 그곳이 언젠가 가 본 길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 길에 서서 "맞아!"하는 감탄사를 나도 모르게 연발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스바흐에 선뜻 가보지 못 한 것은 무슨 이유때문이었을까?
독일에 살 기회가 세 번이나 있던 나는, 그 중 두 번을 같은 도시에서 살았다. 말이 두 번이지, 그 두 번 간에는 십년이라는 긴 세월이 강물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십년이 지나 같은 도시에 돌아와 산다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가슴 두근거림'이었다. 누군가 "왜 그게 가슴 두근거림이냐"고 묻는다면....... 어쩜 눈물이 쏟아져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슬퍼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런 경우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주 찾던 찻집을 어떤 연유로 한동안 못 가다가, '오랜만에 차나 한 잔 할까?'하고 잔뜩 부풀어 찾아가 보니, 그 찻집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다른 가게만 덩그라니 자리하고 있는......
같은 도시 같은 길을 걷지만, 정작 젊은 날 건배를 외치며 이런 저런 주제들에 열광하던 그때의 그 사람들이 없음이 나를 길 위에서 망설이게 하곤 한다. 어느 순간 어느 거리에서 "헐~~~~~~"하며 그 자리에 못이 박힐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머리속에서 아슴푸레 자리잡은 기억들이 더 두려웠는지도.
독일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페르스바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원인 모를 불안감은 어쩌면 이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완전하지 못한 편린들, 그 기억의 파편들이 결코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생각을 붙들려 해도 도무지 붙들어지지가 않는 그 애매한, 그러면서도 가슴 아린 그것... 그것 때문에 내 발걸음이 그리도 오래 머뭇머뭇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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