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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할머니라는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집어든 케잌

by 비르케 200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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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케잌을 하나 사오게 되었습니다. 빵이나 케잌을 사려던 게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집어 가져가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그것을 카트에 넣고 말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고른 그 케잌을 우연히 보게 되었던 것이, 봉지에 적힌 '할머니(Oma)'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팔려 나도 모르게 카트에 넣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할머니의 낲쿠헨(Oma's Napfkuchen: 사발 모양의 틀에 반죽을 담아 오븐에 구워낸 카스테라 종류)'이란 한 마디에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죠.  



서양에서도 할머니는 한없이 좋은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나로 하여금 이 케잌을 사게 만들었던 마트에서의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이 '할머니'란 단어에 맘이 약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문득 이 블로그 '독일 노래' 카테고리 안에 있는 Opa ich vermisse Dich - Sleipnir
의 가사도 떠오르네요. 간단한 한 소절이지만, 상상만으로 참 행복해지곤 하는...

  Es ist einer dieser Tage, an dem wir bei Oma sind.
  Es duftet nach Kuchen und Kaffee.


  할머니네에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케잌과 커피 향이 나던...

제게도 할머니댁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던 독특한 냄새,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서 느껴지던 따뜻함이 이적지 가슴속에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할머니댁 마루에 걸려 있던 따스한 햇살에 그만 눈이 가물가물 감겨 들어가 행복한 꿈을 꾸던 적도 있었고, 마당에 멍석을 깔아 그 위에서 팥죽을 먹고, 옥수수, 감자를 먹던 기억들... 잔칫집에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손주들 생각에 할머니는 떡이며 찰밥을 손수건에 싸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먹고 덤으로 싸온 것이 아니라, 당신 몫을 일부러 안 드시고 싸온 것이었죠. 잔치라도 그때는 참 힘든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의 제 할머니는 말만 할머니지, 기껏해야 50대의 젊은 분이셨는데, 지금은 연로하셔 한번씩 가족들을 놀라게 하시곤 합니다. '이러다 내가 없는 와중에 갑자기 할머니께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끔은 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시는 분이 제 할머니십니다.    

사람이 기억이 많다는 게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그 기억을 나눌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남은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래도 그 사람을 기억할 만한 추억이 있어 행복한 것일까요?

'할머니의 낲쿠헨'은 너무 달고, 목이 막히고... 그러면서도 침묵속에 그저 우물거리는 소리로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연로하셔서 언제 가실지 모르는 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만질 수도, 맛을 볼 수도 없는 것이, 그저 가슴 한 편에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만 남아, 마음속으로만 어디론지 한참을 달려가게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어쩌면 그 알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낲쿠헨' 한 조각에도 쉬이 갈증이 나고 목이 막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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