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 의회 선거(Landtagswahl)'가 있는 날이다. 일요일이 선거날이다. 게다가 거리에 현판은 등장했지만, 선전이나 플래카드 일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 너무나도 조용한 선거이다. 느즈막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사민당(SPD)의 대학등록금 공약이 최고 관심사다.
독일은 원래 대학 등록금이 없는 나라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른 복지 시스템과 더불어 대학 등록금도 사회보장 차원의 지원대상이었다. 10년 전 내가 이곳에 있을 때에도 '등록금' 이야기는 속속 등장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그저 '설'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 2007년 여름학기부터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 등록금을 받고 있다. 지금 현재 학기당 500유로 정도이니, 우리돈으로 100만원이 못 된다.
'대학 등록금 천만원 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황당하리만치 적은 액수에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이제껏 안 내던 돈이 고스란히 부모들의 몫으로 돌아온 셈이다. 사실 독일 학생들은 20세 이전에 독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는 문화가 많이 다르다 보니, 부모와 같이 살면 이성친구도 못 사귀는 게 현실... 부모 입장에서는 그저 자식의 생활비(기숙사비+ 용돈) 정도만 지원해 주면 되었던 것이 이젠 등록금까지 부담지워지는 게 버거운 것이다.
지방자치가 잘 이루어져 있는 독일에선 아직도 사민당이 지배적인 일부 주에 대학 등록금이 없다고 한다. 이 곳 바이에른의 등록금도 없애주겠다고 공약을 내 건 사민당의 현판이 대학 입구 길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학등록금은
unsozial(반사회적)이며 ,
ungerecht(부당한)이며,
unsinn(터무니없는)이다.
라고 그들은 말한다.
내심 이러한 발상을 꿈꿀 수 있는 이들의 부(富)가 부
럽기까지 하다. 다른 선진국들 같으면,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의 경우엔 초등학생 하나 가르치기도 벅찬 마
당에, 대학까지 자국민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주니,
당연 외국 유학생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독일..
거기에도 이의를 달 사람이 분명 있겠지만..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혜택도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저렴하게 운영되는 기숙사에서 부터, 일정 거리의 버
스나 전철, 심지어 기차까지 저렴하게 이용 가능한 데
다, 학생에게 적용되는 각종 할인혜택들..
이 모든 혜택들을 두고도 이들의 등록금 무효화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선거날의 풍경은 너무나 고즈넉하다. 내가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지난 선거들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연방의회 선거(Bundestagswahl)는 규모가 더 크니 홍보도 이번과는 다르겠지만, 이번 선거만 놓고 볼 때, 유일한 길거리 홍보매체인 현판도 그닥 화려하지 않다. 검소한 독일인들의 일상을 보자면, 아마도 후줄그레한 이 현판들 역시 지난 선거 후 재활용하는 합판이 아닐지 사료된다.
얼굴 사진도 실물보다 촌스럽기 그지없을 정도... 소리쳐 외치지도 않는다.
현판을 통해 주민들과 만남을 가질 시간과 장소를 알려 자신들의 공약에 대해 이야기 나눌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공약을 들어보라 권하기도 한다.
현판의 내용도 다채롭다.
책을 쌓아 올려놓고, 그 책 위에 지친 듯 엎드린 어린 아이의 사진을 실은 현판이 눈에 띈다.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교육현실을 꼬집고 거기에 대한 자신들의 잣대를 제시한...
또 FDP의 경우엔, 거의 모든 현판을 검정 바탕에 노란 글씨로 장식했다.
다른 정당, 다른 후보와는 현저히 다름(Kontrast/ contrast)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단연 눈길을 끄는 용감한 후보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찍을 사람이 없나요?"
"그럼 저라도 찍으세요. 선거를 안 하는 것보다 저라도 찍는 게 더 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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